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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부 쪼끔

[4] 글쓰기 기술, 넷째 '글의 구조 짜기' -휘준-

by 휘준창 2025. 4. 17.

글 잘 쓰기 = 글 구조 짜기
글 잘 쓰기는 글의 구조 짜기

1. 구조 없는 글은 나침반 없는 항해

글을 쓸 때 가장 흔하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쓰다 보면 방향을 잃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소재가 떠올라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몇 문단쯤 쓰고 나면 문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내 안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막상 그 말을 풀어낼 질서가 없다 보니 글이 뱅뱅 돌고 만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글의 ‘구조 설계’, 즉 개요 짜기다. 구조는 글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나침반이자 지도다.

글을 쓴다는 건 단지 문장을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생각의 흐름을 독자가 따라올 수 있도록 잘 설계하는 일이다. 독자가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발자국을 남기는 작업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구조를 먼저 짜보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란 꼭 딱딱한 틀일 필요는 없다. 단지 내 생각을 어떤 순서로 꺼낼지, 어느 부분에서 강조할지, 어떤 이야기를 앞에 놓고 무엇을 뒤에 놓을지 미리 그려보는 과정이다.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동선을 정리하는 것처럼, 글에도 경로가 필요하다.

 

2. 구조는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

개요 짜기는 종종 번거로운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당장 떠오르는 문장부터 쓰고 싶고,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도착하겠지 하는 기대도 생긴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다 보면 그 즉흥성은 자주 한계를 드러낸다. 생각은 복잡하고, 감정은 순간마다 달라진다. 그 모든 것을 즉석에서 조율하려 하면, 글은 산만해지고 만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그려보는 건 글쓰기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습관이다.

구조를 짠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러운가?’,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가?’, ‘어느 지점에서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컨대 수필을 쓸 때 ‘일상의 소소한 위로’를 주제로 정했다면, 구조는 대략 이렇게 짤 수 있다. 1)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대한 서두, 2) 내가 경험한 어떤 일화, 3) 그 일화를 통해 느낀 감정이나 변화, 4)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 이런 식으로 간단히 순서를 정해두면, 쓰는 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쓰는 동안 내 감정이 변하더라도, 구조라는 뼈대가 그 변화를 견고하게 지탱해 준다.

 

3. 탄탄한 구조가 글의 설득력을 높인다

특히 글의 목적이 설득이나 주장일 때, 구조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아무리 주장이 훌륭하고 문장이 유려해도, 그 논리가 엉성하면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구조는 설득력 있는 글의 필수 조건이다. 주장-근거-예시-결론, 이런 식의 기본 틀도 좋지만, 더 효과적인 구조는 글의 목적과 독자의 성향에 따라 변형되어야 한다. 예컨대, 감성적인 독자를 위한 글이라면 먼저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시작해 공감을 얻고, 그 후 주장을 꺼내는 식의 구조도 좋다. 반대로, 이성적인 독자에게는 정확한 팩트와 통계로 시작해 신뢰를 확보한 다음, 그 뒤에 해석과 메시지를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가 과거에 한 칼럼을 쓸 때의 일이다. 주제는 ‘자기 확신이 지나친 사회’였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게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문제 제기로 시작해 바로 논리적인 분석을 넣으려 했지만, 무언가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구조를 바꿨다. 1)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 소개, 2) 그것이 왜 불편했는지 나의 경험, 3) 이 현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4)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결말. 구조를 재정비하자 글이 훨씬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독자들의 반응도 훨씬 긍정적이었다. 결국, 글의 힘은 얼마나 진심을 담았느냐가 아니라, 그 진심을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달려 있다.

 

4. 좋은 구조는 읽는 이의 길을 밝힌다

글쓰기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독자는 그 여행의 동반자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어떤 풍경 속에서 들려줄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길이 험하고 안내가 없으면 중간에 독자는 돌아서기 마련이다. 구조는 독자를 위한 배려이자 초대장이다. “이렇게 따라오면 돼요.”, “곧 중요한 장면이 나와요.” 하고 말해주는 손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는 나 자신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흔들린다.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구조가 없다면 그 모든 생각들이 글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정리된 구조는 그 혼란 속에서도 길을 찾아준다. 구조는 나의 글을 지켜주는 뼈대이며, 글쓰기의 마지막 준비운동이다. 글을 쓰기 전 10분간의 구조 설계가, 글을 쓰는 2시간을 훨씬 단단하고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결국 글쓰기란, 한 문장 한 문장 쌓아 올리는 건축의 일이다. 아무리 멋진 재료가 있어도, 설계도가 없다면 그 집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매번 글을 쓰기 전 이렇게 물어본다. “이 글은 어떤 길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