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하나를 지나자, 말수가 줄어들었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면, 괜히 자세를 고쳐 서게 된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큰 소리로 웃거나, 서둘러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든다. 안내를 맡은 해설사의 설명이 시작되지만, 사실 이곳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먼저 길을 연다. 문 하나를 지나자, 발걸음 소리부터 달라진다.
후원은 궁궐 안에 있으되, 궁궐 같지 않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너무 자연스럽고, 숲이라 부르기엔 사람의 손길이 너무 정중하다. 조성했다기보다 ‘함께 두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길은 반듯하지 않고, 시야는 한 번에 트이지 않는다. 몇 걸음 걷고 나서야 풍경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자연이 “조금만 더 천천히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말수가 줄어든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진을 찍으려 다도 손이 멈추고, 설명을 들으려 다도 귀보다 눈이 먼저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사람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조용히 걷고, 조용히 서고, 조용히 바라보는 존재로.
연못과 정자 사이, 계절이 앉아 쉬는 자리
후원의 중심에는 연못이 있다. 네모난 연못, 부용지.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풍경은 결코 네모나지 않다. 물 위에 비친 하늘과 나무, 정자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바람이 불면 수면은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면 연못의 표정도 바뀐다.
봄에는 연둣빛이 먼저 말을 건다.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색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연못을 덮고, 물 위에는 그늘이 내려앉는다. 가을이 오면 단풍이 물에 먼저 떨어지고, 겨울에는 모든 색이 사라진 자리에 구조와 선만 남는다. 후원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 와도 같은 자리에 있지만, 결코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자에 잠시 앉아 있으면, 시간이 느려진다기보다 흐트러진다. 시계로 재는 시간은 의미를 잃고, 햇빛의 각도와 바람의 방향이 시간을 대신한다. 왕과 신하들이 이곳에 앉아 시를 읊고 차를 마셨을 장면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정치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 앞에서 한 사람으로 돌아오는 자리. 후원은 그런 쉼을 허락한 공간이었다.
가장 깊은 가르침은, 앞서지 않는 태도였다
후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깨닫게 된다. 이곳의 진짜 아름다움은 풍경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자연을 꾸미지 않고, 이기려 하지 않고, 한 발 뒤에서 지켜본 태도. 나무는 자라는 대로 두고, 연못은 땅의 형세를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은 그 사이에 조용히 길 하나를 놓았을 뿐이다.
이 정원에는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없다. 사진 명당이라 불릴 만한 곳도 있지만, 억지로 시선을 끄는 장면은 없다. 그래서인지 오래 머물수록 마음이 낮아진다. 더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줄어들고, 그저 보고 있는 것으로 충분해진다.
나는 후원을 걸으며 자주 멈췄다. 걷다 멈추고, 서다 앉고, 앉다 다시 걷는다. 그 반복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리듬이 마음에 들었다. 삶도 이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가려 애쓰지 않고, 계절이 바뀌는 속도를 믿으며, 필요할 때는 멈출 줄 아는 것.
후원은 그렇게 가르친다. 자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절대 앞서지 말 것. 그 가르침은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 남는다.
후원을 나서며 다시 문 앞에 섰을 때, 들어올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고, 불필요한 말이 조금 줄어들었다.
창덕궁 후원은 비밀이라 불리지만, 사실 숨기고 싶은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주 꺼내 보고 싶은 마음의 풍경에 가깝다. 바쁠수록, 말이 많아질수록, 앞서가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떠올리게 되는 곳.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늘 같은 태도로 그 자리에 있는 정원.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후원은 궁궐의 뒷마당이 아니라, 삶의 앞마당이라고. 언제든 다시 돌아와, 잠시 신발을 벗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