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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윤여선의 土曜斷想 : 구두닦이

by 휘준쭌 2025. 7. 26.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7.26.)
========={제 194회}========


오래전, 어느 월간지에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 가까이서 구두 닦는 일을 하던 어느 미화원(美靴員)에 대해 언급했던 글이지요. 그 미화원은 여자분이었는데, 당시 인천공항의 물류단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 문제 되는 부분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를 괜히 썼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중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 글이 잡지에 실리고 난 어느 날, 당사자인 미화원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들어와 아무런 이유 없이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원들 중 누군가와 시비가 벌어졌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화를 내는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직원들한테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습니다.

구두닦이의 성실성
구두닦이

 

며칠 후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 당시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러한 냉전은 그 뒤 얼마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미화원 아주머니와는 평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였고, 성격도 서글서글한 분이라서 직원들과도 사이가 좋았는데, 그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녀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왜 사무실에 와 그토록 난리를 쳤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 이유를 미루어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원인은 월간지에 썼던 그 글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월간지에 썼던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글 이야기를 해 주었고, 어떤 이는 복사까지 해주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들은 좋은 뜻에서 했던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같은 말을 여러 번 듣고, 내용 중에도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분풀이를 글을 쓴 당사자에게 할 수 없으니 대신 당사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분풀이를 했던 것입니다. 당시에 썼던 글의 일부 내용입니다.


"김포공항 입구와 인천공항 구내에는 각각 한 명씩 구두를 닦는 미화원이 있다. 한 명은 남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여자인데,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자세가 이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해 준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매일 아침 나라를 위한 기도를 거르지 않는다는 김포공항 입구의 미화원 아저씨, 그리고 자신이 닦은 구두를 즐겁게 갈아 신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행복감을 느낀다는 인천공항 물류단지의 미화원 아주머니. '구두닦이'라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시할 수도 있는 이들의 입에서 나라의 현재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기도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소위 엘리트 계층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 글 중에 그분의 마음에 가장 거슬렸던 것이 아마도"구두닦이라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시할 수도 있는 이들"이라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글을 썼던 당시에는 그 미화원 아주머니가 알게 되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내용 자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다만, '구두닦이'라는 말과, '천시(賤視)'라는 말이 그분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전체적인 맥락으로서는 그분의 생활 태도를 칭송하고 있지만, 직업과 관련된 부분이 당사자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던 것이겠지요. 더구나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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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계기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름과 생각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글을 써서 발표하지만, 그 글이 자칫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생각지 않던 부분에서 관련 당사자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썼던 글의 경우,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단지 어휘의 선택에서 문제가 있었을 뿐이지요. 그러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전체적인 맥락을 넓게 이해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구두 닦는 일이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요.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의 주인공은 둘 다 '구두 수선공'입니다. 톨스토이가 심혈을 기울여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쓴 소설의 주인공들을 가난하고 불행한 구두 수선공으로 택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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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선/관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