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입맛도 더위 먹는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에어컨 바람은 한계에 다다르고, 부채질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무언가를 먹기는커녕, ‘씹는다’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지는 날이 있다. 밥상을 차리는 손도, 그걸 받아먹는 입도 동시에 파업 중이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냉장고 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
여름은 입맛을 앗아가는 계절이다. 유독 무기력하고, 아무리 먹어도 개운하지 않다. 더운 날일수록 몸은 에너지를 덜 쓰려 하고, 소화력은 떨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무리한 식사는 오히려 독이다. 그래서 필요하다. 차갑고 가볍고, 조리 과정도 단순한 음식들. 입맛을 살리는 건 자극이 아니라 온도의 변화일 때가 있다. 한입 먹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는 그런 음식. 오늘은 그런 요리를 소개하려 한다. 냉장고 속에서 막 꺼낸 듯한 시원함으로, 여름을 견디는 비법 같은 것들 말이다.
- 불 없이도 충분히 맛있다 — 노오븐 간단 레시피
이 무더위에 가스레인지 앞에 선다는 건, 거의 전장에 나서는 심정이다. 더위에 지친 날엔 최대한 ‘불 없이’, ‘빠르게’, ‘설거지 적게’ 요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복잡한 조리법보다는, 재료의 맛을 살리는 조합이 답이다. 다음은 불 사용 없이 만들 수 있는 대표 간단 레시피 몇 가지다. - 차가운 두부카프레제
재료는 단순하다. 부드러운 연두부, 방울토마토, 바질잎이나 깻잎, 그리고 소스는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 약간. 연두부를 큐브로 썰고, 토마토와 잎채소를 함께 담아 드레싱을 뿌리면 끝. 고소함과 산미가 입안에 맴도는 여름 대표 입맛 회복식이다. - 오이냉국 리프레시 버전
시원한 오이냉국은 물보다 시원하다.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이고, 식초 1큰술, 설탕 1/2큰술, 소금 조금, 찬물 한 컵을 부어 섞는다. 여기에 얼음 동동 띄우면 여름 별미 완성.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를 넣으면 칼칼한 맛까지 챙길 수 있다. - 요거트 그래놀라 컵
입맛이 없을 땐 디저트를 식사처럼 먹자. 플레인 요거트에 얼린 과일, 바삭한 그래놀라, 견과류, 꿀 한 방울을 더해보자. 보는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고, 한 숟갈 뜨면 더위를 밀어내는 달콤함이 퍼진다. 특히 냉동 망고나 베리를 곁들이면 아이스크림 부럽지 않다.
노오븐 레시피의 매력은 준비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길다는 데 있다. 불 앞에서 땀 흘릴 필요도 없고, 입가심까지
한 번에 되는 간편한 음식들. 더운 날일수록 간단하게, 시원하게. 여름은 요리보다 아이디어로 견디는 계절이다.
6. 얼음 한 잔보다 강력한 시원함 – 홈메이드 여름 음료
여름엔 음식보다 음료가 더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수분과 미네랄 보충이 절실해진다. 달달한 음료보다 상큼하고 청량한 맛이 그리운 날,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여름 음료를 소개한다. 만드는 재미는 물론, 냉장고에 예쁘게 병으로 채워두면 보는 즐거움도 덤이다.
7. 상큼 레몬청 스파클링
기본 재료는 레몬청과 탄산수.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레몬청 두세 숟갈을 넣은 뒤, 탄산수를 가득 따른다. 민트 잎이나 레몬 조각을 올리면 리조트 카페 부럽지 않은 비주얼이 완성된다. 청량감은 말할 것도 없고, 단맛은 레몬청 양으로 조절 가능하다.
8. 얼린 과일 수박주스
수박을 미리 깍둑 썰어 냉동해두자. 갈아 마시기 직전 꺼내 믹서에 우유나 물과 함께 갈면 설탕 하나 넣지 않아도 달고 시원한 수박주스가 된다. 얼린 과육 덕분에 얼음이 필요 없다. 냉장고 속 시원함이 혀끝에 먼저 도착하는 마법 같은 음료다
9. 오이+라임 워터, 냉장고 속 피로회복제
한동안 유행했던 디톡스워터지만, 더운 날엔 냉수 한 병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분 충전법이다. 슬라이스한 오이와 라임을 물병에 담고 냉장고에 2시간 이상 두면, 오묘하게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 우러난다. 당은 없지만 목넘김이 부드럽고, 갈증이 싹 사라진다.
이렇게 만든 음료는 얼음만 잔뜩 채운 컵에 따라 마셔도 좋고, 보틀에 담아 책상에 두고 조금씩 마셔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만든 것'이라는 만족감. 여름은 바로 이 한 모금의 기쁨으로 살아낸다.
☀️ 마무리하며 — 더위를 이기는 건 맛보다 마음
사실 냉장고 속 음식으로 더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입속에 들어오는 순간의 시원함은, 단지 온도 그 이상의 감각을 건드린다. ‘아,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건 단순한 맛 이상의 위로다.
여름은 매일매일이 작은 전투다. 온도계와 싸우고, 땀과 타협하고, 입맛과 화해하는 날들이다.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는 일. 냉장고에 들어가진 못하더라도, 냉장고 같은 음식 하나쯤 꺼내놓는 일.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버틸 힘이 생긴다.
당신의 여름이 조금이라도 덜 지치길 바란다. 그리고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한 모금, 한 입의 여유를 꼭 누리시길. 어쩌면 우리가 진짜 바라는 건 냉장고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평온함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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