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2회}========(2025.07.12.)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습니다.
만약 6.25 전쟁 당시 아군의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고, 부산이 함락되어 이승만 대통령 정부가 일본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것이지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지금의 북한처럼 김일성 왕국에 충성을 바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밀고하고, 제한된 자유로 이웃 동네로의 나들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겠지요.
물론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절대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자의(恣意)만이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신(神)의 섭리에 영향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상에 따라, 역사가 현재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을 '대체역사(代替歷史:alternative history)라 부릅니다.
소설 <비명(碑名)을 찾아서>를 쓴 복거일 (卜巨一) 작가는 책 서문(序文)에서 '대체 역사 소설''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대체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이 현재의 역사와 다르게 결말났다는 가정을 하고 그 뒤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 기법이다."
이는 주로 과학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지만, 일반 소설에서도 즐겨 사용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역시 복거일 작가의 <비명을 찾아서>이지요. 이 작품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대한민국의 실제 역사와 달리, 일본의 지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고, 1945년 해방되는 실제 역사와 달리, 이토가 암살을 모면하고 1925년까지 살면서 미국 등 주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키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이토' 이후에도 일본은 발전을 계속하고, 식민지인 조선(朝鮮)의 국민들은 일본 정부의 철저한 통제와 은폐 속에 자신들의 언어와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2등 국민으로서 살아갑니다.
주인공인 '기노시타 히데요'는 한반도 조선 태생으로서, 경성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재벌 회사의 조선 내 계열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하지만, 여러 면에서 '내지(內地)'인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조선은 독자적인 역사나 언어를 갖지 못하고 삼국시대부터 일본에 복속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기노시타가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동학란 때 조선의 독자적인 '정부'가 청과 일본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史實)을 우연히 알고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조선의 존재와 역사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지요. 마침내 일본 출장 중 '삼국사기'등 조선 역사서를 복사해서 들여오다 공항에서 적발되어 구속되고, 그를 석방시키는 것을 빌미로 아내와 딸을 성추행한 일본 수사기관 장교를 살해합니다. 도망자가 된 그가, 명목뿐인 상해 임시정부를 향해 망명의 길을 떠나는 것이 이 책의 종결 부분입니다.
"그는 가슴에 고인 슬픔을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비참한 도망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렀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망명객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땅을 찾아가는 망명객이다.' 배낭을 추스르고서, 그는 먼 대륙으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 놓았다."
복거일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36세였던 때부터지요. 그가 소설의 서문에 쓴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과 회사에 다니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꼬박 4년 동안 칩거하면서 쓴 작품입니다.
남자 나이 36세면 사회나 직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연륜과 위치인데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장편 소설 하나에 모든 것을 건 작가의 용기가 놀랍습니다.
"안타깝기야 부모님이요, 괴롭기야 안식구였겠지만,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아빠의 마음을 아는 듯, 병원 출입이 거의 없이 세돌을 넘긴 은조(아들)에게 제일 큰 공을 돌린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글 쓰는 가장을 말없이 격려해 준 가족들에게 주는 <고마움의 말>입니다. 물론 스스로도 어느 만큼 자신을 갖고 있었겠지만, 문학 외골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부럽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작가적 역량입니다. 또한 시인으로서 군데군데 비추이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들이 많은 감동을 주지요. 지나치게 현학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작가적인 역량을 돋보이게 해서 작품의 무게를 더 중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영웅전(英雄傳)>에서 "역사는 진실과 거짓이 혼합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록에 의한 역사가 아니라, 구전(口傳)과 전설(傳說)에 의존해 역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의 역사도 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역사학자나 작가들의 임의적인 판단과 해석이 역사의 기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명을 찾아서>와 같은 '대체 역사'도 오랜 세월 뒤에는 하나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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