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6.07.)
========={제 187회}========
밭의 벤치 옆에는 키 작은 매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나무이지요.
심긴 지 꽤 오래됐는데도 많이 자라지 않고, 생긴 모양도 볼품없어 큰 관심을 주지 않았던 나무입니다.
벤치에 앉으면 앙상한 가지가 가끔 몸에 닿아 귀찮다는 생각만 들뿐, 돌보아 주기는 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지요.
며칠 전, 밭작물에 물을 주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그날따라 그 나뭇가지들이 어깨에 자주 닿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들이 어깨를 스치며 세미한 자극을 주는 것이었지요.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평소와 달리 벤치에 앉은 채 작으나마 관심을 갖고 그 나무를 올려보았는데, 한참 바라보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나뭇가지들이 진딧물들에 두텁게 덮여 있는 것이었지요. 온통 희고 까만 진딧물로 인해 주황색의 본래 색깔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아 진딧물이 그토록 나무 전체를 덮고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잎과 가지들을 하나씩 손으로 젖혀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가지는 물론, 많은 이파리 뒷면에도 진딧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뭇잎들이 진딧물로 인해 이미 노란색을 띠며 오그라들고 있었지요.
나무의 가지와 이파리를 살펴보는 동안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연민이 솟아올랐습니다.
진딧물들에게 온몸을 통해 영양분을 빼앗기며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매실나무를 일찍 구해주지 못했던 데 자책감도 들었지요.
그 즉시 창고에서 진딧물 제거제를 꺼내 물에 타 소형 분무기로 뿌려 주었습니다. 정상 용량보다 좀 더 많이 타서 이파리와 잔가지는 물론 굵은 줄기에도 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골고루 뿌려 주었지요.
그렇게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가보니 진딧물들이 나무 밑에 하얗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호스에 수돗물을 연결하여 세게 뿌려주자 그때까지도 잎과 가지에 붙어있던 나머지 진딧물들마저 모조리 땅에 떨어지고 나뭇가지들은 본래 제 색깔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진딧물 제거 작업으로 인해 그 매실나무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이제는 나무가 갖고 있는 문제를 샅샅이 살펴보게 되었지요.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잔가지들과 옹이들을 톱으로 말끔히 잘라 주고, 구덩이를 깊이 파 퇴비와 비료를 섞어 넣어 주었습니다.
나무 밑과 주변의 키 큰 잡풀들을 뿌리 째 뽑아 없애주고, 진딧물로 오그라든 채 말라붙어 있던 이파리와 잔가지들을 없애주니, 나무는 언제 죽을 위기에 처했었느냐는 듯 본래의 말쑥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바람이 불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무겁게 수그린 채 침울하게 잠겨있던 나무가 이젠 가벼운 미풍에도 이파리들을 살랑거립니다. 매실나무와 맺어진 인연은 이토록 단순한 관심과 연민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인연'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어서, 전혀 뜻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예상치 않았던 계기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란 사실을 이번에 새로 확인했습니다. 매실나무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밭에 가기 위해 수없이 그 앞을 지나면서도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우연히 그 나무에 붙어있던 진딧물들을 발견하고, 괴로움 당하는 그 나무에 연민을 느껴 진딧물들을 제거해 주는 과정에서 그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어린왕자가 장미꽃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혼자 있는 내 장미가 수백 송이 다른 장미들보다 훨씬 중요하지. 왜냐하면, 내가 물을 주었고, 유리덮개를 씌워 주었고, 바람막이도 세워 주었고, 쐐기벌레도 잡아 주었기 때문이야. 나는 내 꽃이 불평하는 소리도, 자랑하는 소리도 들어주었지. 심지어 침묵을 지킬 때에도 이해해 주었어. 그 꽃은 내 장미꽃이니까."
이처럼 그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보다, 어떤 특별한 계기에 의하여 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인연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수필가 '피천득'의 작품들 중에 <인연>이란 제목의 수필이 있습니다.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빠짐없이 연상되는 그의 대표 작품이지요.
피천득이 17세 때에 공부하러 일본에 갔다가 한동안 머물렀던 하숙집에는 '아사코(朝子)'라는 그 집 딸이 있었습니다. 소학교 1년생이었지요.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둘 사이에는 무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기운이 흐릅니다.
초등학교 때와 고등 여학교 때, 그리고 아사코가 결혼한 후, 모두 세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둘의 관계에는 실제적인 발전이 없었지요. 그러나 피천득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사코에 대한 생각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네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세 번째 만남은 아사코가 결혼한 다음 그녀의 집에서 이루어졌는데, 미군 장교 남편과 살면서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아사코에 대한 짙은 연민이 배어 있습니다. 아무런 열매가 없는 만남이었지만, 굳이 '인연'이란 제목으로 사연을 써 내려간 이유는, 비록 결과가 없는 만남이었다 하더라도 관심과 그리움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연민의 정이 두 사람을 이어줬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의 관계는 수없이 많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인연의 끈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의미와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수필 > 명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에 대하여 / 이문열의 귀한 수필 (3) | 2025.06.01 |
---|---|
윤여선의 土曜斷想: '현충일과 국군의 날' 맞이 현충원 참배와 봉사 (2) | 2025.05.31 |
피천득의 '은전 한 닢', 이재성의 '동전 한 닢' (0) | 2025.05.25 |
윤여선의 土曜斷想 '클로버와 토끼풀' (2) | 2025.05.24 |
윤여선의 土曜斷想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깃발' (3) | 2025.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