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기록이 된다 — “글은 시간의 타임캡슐이다”
글은 기억보다 오래간다
사람들은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고 하지만,
저는 나이 들수록 반대로 느낍니다.
“글 한 줄이 사진 백 장보다 낫다.”
앨범 속 사진은 많은데,
그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사진은 “어디서” 찍었는지는 알려주지만,
“어떻게 살았는지”는 말해주지 않거든요.
예전에 아내와 커피 마시며 썼던 짧은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오늘 아내가 처음으로 ‘여보’라고 불러주었다.
단어 하나에 내가 고개를 세 번 끄덕이다가 목 디스크 올 뻔했다."
그 순간의 기분이 글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더군요.
그게 바로 글이 가진 시간 보관 능력,
즉 타임캡슐 기능입니다.
기억은 흐려져도,
기록은 또렷합니다.
은퇴 후 시간은 슬그머니 흘러간다
공무원 연금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건 고맙지만,
시간도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건 너무합니다.
하루는 밥 먹다 보면 지나가고,
일주일은 세탁기 돌리다 보면 사라지고,
한 달은 병원 예약 기다리다 보면 끝나고요.
어느 날은 ‘내가 뭐 하고 살았지?’
싶은 날이 종종 옵니다.
그럴 때,
노트북을 열고
한 줄이라도 적어두면
하루가 '흔적 있는 하루'가 됩니다.
“오늘 아침 된장국이 너무 짜서, 아내에게 나도 모르게 웃으며 잔소리를 들었다.”
이 한 줄이
훗날 나에게 말합니다.
“그날, 당신은 꽤 유쾌하게 살고 있었군요.”
글은 기억이 바람처럼 사라지기 전에 살짝 붙드는 도구입니다.
은퇴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라서,
써놓지 않으면 싹 지워집니다.
글쓰기란 결국,
지워지지 않게 ‘붙드는 손’ 같은 것이죠.
“나의 과거”를 읽는 재미
글쓰기의 또 다른 재미는
‘나의 과거’를 제삼자처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종종 10년 전, 20년 전 수첩이나 파일을 꺼내 읽어봅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런 글이었죠.
“오늘 딸이 처음으로 나를 ‘잔소리 그만하세요’라고 했다.
어제까진 ‘아빠’였는데, 오늘부터 ‘잔소리 기계’가 된 느낌이다.
그래도… 귀여운 기계다, 나는.”
읽으면서 웃었죠.
그리고 약간 찡했습니다.
딸은 이미 시집가서 손주 엄마가 되었고,
저는 여전히 하루 두 번 혈압약을 챙겨 먹는 기계(?)가 되었지만,
그때 그 글은,
사라졌던 순간을 되살려주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잘 지나갔지?”
“그러니까, 이번에도 지나갈 거야.”
이런 대화는
기억으로는 불가능하고, 기록으로만 가능합니다.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입니다.
지금은 오늘 하루를 기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의 내가
읽고 웃거나 울 수 있도록
편지를 써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글을 남겨놨다고 해봅시다.
“요즘 아내가 묻는다.
‘당신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요?’
대답 못 했다.
사실, 치약을 거꾸로 짠 걸 지적했다가 아직도 삐쳐 있으시다.”
이 글을 나중에 읽으면
그 상황이 고스란히 떠오를 뿐 아니라,
아내와의 소소한 다툼조차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글은 감정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 감정을 보관해줍니다.
기분 좋은 날은 물론이고,
울적한 날, 실망한 날,
기운 없는 날에도
한 줄 적어두면
그 순간은 낭비가 아니라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훗날 가장 따뜻한 자산이 됩니다.
그 자산은 이율이 붙지 않아도,
읽을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 마무리하며 — ‘매일 한 줄’의 기적
누군가는 말합니다.
“글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집니다.
당장은 안 보이지만, 분명히 달라집니다.
오늘 쓴 한 줄이,
다음 주에 나를 웃게 하고,
내년의 나를 감동시키고,
10년 뒤의 나를 깊게 울릴 수도 있습니다.
매일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세 번이라도
내 삶을 타임캡슐에 담아두세요.
펜 하나, 키보드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안에 오늘의 내가 있고,
내일의 내가 있고,
그보다 먼 미래에 미소 짓게 될 내가 있습니다.
글은 순간을 담는 그릇이자,
마음을 보관하는 냉장고이며,
시간을 되살리는 리모컨입니다.
자, 오늘 하루는 어떤 문장으로 남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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