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 -"
응, 나야. 아까 얘기한 거 말고, 화장실 얘기라면 또 있지. 재작년이면 2년 전인가? 그럼 재재작년 변산에 놀러 갔을 때야. 민박집의 화장실이 아래 모음통이 엄청 큰 구식 화장실이었어. 베니어판 뚜껑을 열고 앉았는데 잠금장치가 없었던 거야. 할 수 없이 문고리를 잡고 볼일을 봤지. 그날따라 볼일이 좀 길어서 팔이 아팠지만 놓을 순 없었어. 순간의 방심이 화를 초래한다잖아. 군대에서 배운 거지.
내가 누구야. 대한민국 땅개 육군병장 강병장. 알지? 신체 건강하고 정신 건전한. 흠..... 그래그래 정정한다. 그냥 몸만 건강한. 아이고 참 내.
아무튼 열심히 잡고 열심히 밀어내고 있었어. 근데 인기척이 다가오고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혹시 힘이 센 사람이 열면 어떡하지?'
여태까지 고생한 게 허사가 되잖아. 나의 팔에 근육이 서기 시작했어. 근데 사람이 두 군데 힘주기는 어려운가봐. 팔에 힘주니까 거기론 힘이 잘 안 가. 어쨌든 최선을 다해 세게 잡았지 거의 문에 매달리다시피. 그런데 갑자기 일이 터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지? 여기서 돌발 퀴즈.
1) 문고리가 빠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2) 문고리를 잡은 채 미련하게 끌려나왔다.
3) 여자인 줄 알고 엉큼하게 문고리를 놓아버렸다.
4) 인기척은 그냥 지나가고 괜히 힘만 썼다.
답은 여기 없어!
어쨌든 헛기침도 해서 접근을 막았어. 그런데 갑자기 뒷문이 덜컹 열리면서 화장실이 환해진 거야. 무슨 변소가 뒷문이 다 있냐고 자세히 보니 앞뒤로 맞붙어있는 변소의 가운데 칸막이 판자가 떨어져서 옆벽에 서있는 거야. 제기랄. 뜨아악!
놀라서 도망간 소리는 여자의 비명이었어. 그녀에게 허연 궁둥짝 보인 것보다 더 창피한 게 뭔지 알아? 문고리를 열심히 잡고 있던 자세를 들킨 거야. 그때 엉덩이 사이에 뭔가 달려있었다면 얼마나 볼만했겠어?
아- 그때부터 서울 올 때까지 나 선글라스 끼고 다녔잖아.
(1999.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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