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집에서 쉬면서 모처럼 거실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주로 아이들이 쓰는 화장실인데 낯선 물품들이 참 많았습니다.
콘텍트 렌즈 케이스, 무슨 세척 용액, 브러시 등에 묵은 때를 보고
딸아이는 아빠가 싫어하는 렌즈를 몰래 쓴 지가 오래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무스와 이름도 모르는 자단한 것들을 보면서, 내 것보다 고급 사양의 칫솔을 보면서,
사용법도 모르는 이상한 화장품들도 보면서, 이곳은 내게 치외법권적인 공간이었구나!
식구들의 가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저는 아이들의 문화에서 격리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옛날의 내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무시 받는 애비는 되지말자고
입술을 깨물던 시절을 돌이켜 봅니다.
그러나 나도 영락없이 내 아버지와 같은 신세임을 변기통에 앉아서 느낍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똥 누면서 둘러본 그 짧은 시간에 사용법도 모르는 많은 물품들 틈에서
이미 낙후된 애비임을 느낍니다.
피자를 좋아하는 애들과 캐찹도 싫어하는 나는
혹시 똥도 틀리지 않을까 하여 변기 안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일어나 바지춤을 추키면서도 돌아서서 묵상(?)에 잠겨있는데'
화장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리더니 아들놈의 흰 손이 쑥 들어옵니다.
"아빠, 만 원만!"
그 자식은 용돈 달래면서도 변기 안을 살펴보고 있는 아빠를 어찌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옛날에 저는 아버지 똥 누실 때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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