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가끔 낮 달로 뜨는 남자 -휘준-

by 휘준쭌 2025. 5. 17.

 

양 옆에 아줌마 둘 두고 뛰기
양 옆에 아줌마 둘 두고 뛰기, 어디가서 해 보나.

 

인천국제공항이 확장 일로에 있던 시기.

심야에도 항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관계 공무원들의 밤샘근무가 이어졌습니다.

 

24시간 근무 후 48시간 휴무인데, 하루 종일 근무하고 이틀간 쉬는 것이니까 많이 쉬는 것 같아도, 

8시간 근무하고 16시간 휴식하는 시스템과 같은 조건이니 더 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3일에 한번씩 출근하는 남자들을 동네에선 맨날 노는 놈들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간첩이 아닌가 의심받기도 했고, 병가 등으로 하루 결석하면 연속 5일을 놀았으니,

이웃나라 여행하기도 용이했었습니다.

 

그런 시절엔 낮에 같이 놀 친구가 귀했습니다. 그래서 한낮에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테니스장이나 볼링장, 수영장같이 아줌마들 천지였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줌마들 얘기를 아니 쓸 수가 없습니다.

 

자, 오늘은 헬쓰클럽이라는 꽃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흐음~ 오늘은 예쁜 여자가 몇인가 두리번거리며 운동화 뒤축을 당기는데,

한 쪽 뒤꿈치의 공기주머니가 터져 있었어요.

 

NIKE air인데, 터졌어도 비싼 것이니 조금 더 신기로 했죠.

그보다는 낯선 여자도 있었고 예쁜 신참 아줌마도 있는 게 마음을 바쁘게 했어요.

이왕이면 다홍치마, 모르는 사이지만 예쁜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좋잖아요.

 

오늘의 호프 예쁜이 아줌마도 나이키를 신고 있었어요. 그것이 이상하게 눈에 확 띄었어요.

사실 실내연습장에서까지 비싼 운동화를 신을 필요는 없거든요.

그것은 수준 높은 차림이거나 낭비죠.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예쁜 사람이 신으면 패션, 못 생긴 사람이 신으면 낭비.

나 이러다가 등짝 몇 대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난 오늘 예쁜이 아줌마 패션에 끌렸어요.

, 동류의식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러나 'NIKE'를 나이키라고 안 읽고 "니케"라고 읽던 아줌마가 생각나서 유심히 봤어요.

그런 아줌마는 아닌 것 같아서 아주 좋았어요. 이상하게 실내 공기도 훨씬 쾌적하게 느껴졌고요.

이 아줌마 옆에 가서 허리 좀 꺾고 저 아줌마 옆에 가서 아령도 들고

러닝머신 가운데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어요.

 

가장자리보다 복판의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양쪽에 아줌마를 두고 뛸 수 있기 때문이죠.

마침 예쁜 아줌마 옆에 자리가 났어요. 잽싸게 올라가서 뛰기 시작했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샐쭉거리며 피했지만 사방 벽이 거울로 장식되어 있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아주 손쉽게 입력되었어요.

 

마흔쯤? 눈이 예쁜 여자였어요. 그래서 나는 땀이 흐르기 전에 자주 닦았죠.

제 앞이마는 약간 대머리인데 땀을 닦지 않으면 볼상 사납기 때문이에요.

체력을 뽐내기 위해서 속도계를 높였어요. 그녀는 6.5, 나는 8.5, 왼쪽 아줌마는 6.0.

낯선 여자의 거친 숨소리, 이를 어디 가서 들을 수 있을까.

 

그녀보다 오래 달리려고 열심히 뛰었으니 얼마나 땀을 흘렸겠어요.

그녀가 뜀틀에서 내려간 뒤에도 나는 계속 뛰었습니다.

다른 운동을 하면서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여자.

그런 일이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니어서 더 유려한 폼으로 뛰었죠.

헬스클럽이 좋은 점은 노리는 여자의 옆모습 뒷모습까지 사방팔방 거울에 있다는 것.

 

젖은 옷이 섹시하게 보일 때가 많으므로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틀어보는데,

그녀가 머뭇머뭇 내 뒤에 와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무슨 말인지 하려는 눈치가 역력하였으므로 나는 호흡으로 똥배를 당겨 뱃살을 없애고,

젖은 앞머리를 젊을 때 장발 넘기듯 고갯짓으로 넘겼어요.

사실 탁월하게 달리던 폼을 생각하면 많지 않은 머리칼이지만,

손 안 대고 넘기는 게 격에 맞았거든요.

 

그녀는 "-"하고 더듬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더듬겠죠. 내가 맘에 들었다면.

젊은 시절 내 별명은 타잔이었어요. 사우나를 가면 몸매는 바꾸자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그녀는 제 인상까지도 맘에 드는 듯 자주 쳐다보았으니,

저보다 더 떨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울 속에 제 인상을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며 런닝머신을 껐어요.

 

그녀의 빨간 매니큐어는 입구 쪽 완력기계를 가리켰어요.

옳거니, 기계 사용법을 물으며 작업 들어오는군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샹송 같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저 죄송하지만 댁의 운동화에서 나는 찌그덕 소리가 거슬리거든요."

 

아이고 이게 뭔 소리여? 사실 그 소리는 나도 간간이 거슬릴 때가 있었지만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그녀는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다시 이었어요.

"저기 회원들이 버리고 간 운동화 중에 쓸만한 것 많거든요."

"......"

(2002년 2월)

 

 **원곡은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MBC 복면가왕 3차 방어한 '빈대떡 신사'의 노래

     모바일로 복면가왕 보실 땐, 가로보기 해주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