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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명수필

오월 -피천득-

by 휘준쭌 2025. 5. 1.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비늘잎도 연한 살결 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 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

실료애정통고 사랑을 잃음도 고통이다

 

젊어서 죽은 중국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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