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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직, 마음은 접지 않는다는 것

by 휘주니 2025. 12. 31.

마음은 접지 않는다
마음은 접지 않는다

 


낙엽처럼 흔들리되, 머무를 줄도 알게 되어 만족한 나뭇잎.
 
그래 나뭇잎처럼 살자. 결정을 미루는 데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망설이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보며 조금씩 저울에 올려보는 방식이다. 이건 저쪽이 낫고 저건 이쪽이 낫고. 제주에 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답변도 이제는 급하지 않다. 당장 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을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좋지 않으랴.
 
사람들과의 관계, 익숙한 일상, 섬에서 배운 느린 속도와 여유.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리며 내 안에서 자리 잡는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는 줄어들겠지만, 선택을 대하는 태도는 더 신중해졌음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제주에서 보던 하늘이 떠오르기도 한다. 색이 아주 비슷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마음이 잠시 섬 쪽으로 기운다. 그렇다고 짐을 싸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먼저 갔는데, 요즘은 몸이 막고 묻는다. “오늘은 진짜 결정할 거냐?” 지금은 아직, 마음을 접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니, 큰 선택보다 하루의 방향이 더 중요해진다.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않을 것, 사람을 급히 재촉하지 않을 것, 저녁에는 괜히 뉴스를 오래 보지 않을 것. 이런 사소한 결심들이 하루를 떠받히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지금 곁에 있는 얼굴들을 보면, 떠난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남는 게 아니라, 이유 없이 함께 살아온 시간이 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무게를 알기에, 제주로 가고 싶은 길은 길지만 그 위에 자꾸 멈춰 서게 된다.
 
그렇다고 섬을 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잊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자주 말하면 결심처럼 굳어질까 봐, 혼자서만 조용히 생각한다. 제주에서 보낸 시간들은 지금도 내 생활의 꺾인 점으로 남아 있다. 무리하지 말 것, 서두르지 말 것, 필요 없는 말은 줄일 것. 이 나이에 이 정도 가르침이면, 꽤 실속 있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결론을 미루고 있느냐고. 그러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직은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어서라고. 섬에서의 고요도, 지금 여기의 관계도 모두 내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가 흐려질 것 같아서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 마음까지 접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결론을 미루며 하루를 산다. 이곳에서 밥 먹고, 사람을 만나고, 저녁이 되면 섬을 떠올린다. 언젠가 마음이 한쪽으로 더 기울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 지금은 아직, 마음을 접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그것은 마치 최백호가 좋으냐 장사익이 좋으냐에 답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확실한 건 '우리의 봄날'은 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