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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명수필

윤여선의 土曜斷想 '내 친구 똑똑이'

by 휘준쭌 2025. 5. 18.

똑똑한 어린이
똑똑한 어린이들은 모두 하나, 넷도 하나 둘도 하나

 

토요단상土曜斷想 제184회 

 

나이 차는 많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1년생인데, 무척 똑똑한 친구이지요.
그가 태어나서부터 이웃으로 함께 살아오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 이제는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와 외출하고 돌아오다 집 가까이서 만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오지요. 

그리고 이쪽 사정이나 형편은 살필 생각도 없이 앞장서서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핸드폰을 사 주었다며 자랑하다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해서 

그의 전화기에 번호를 입력해 주었더니, 바로 전화를 하고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 놓으라고 지시하더군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공부도 하고, 영어 등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내 친구들도 잘 사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밭에서 일하는데 왔길래 채소에 물을 좀 주라고 했더니, 

무엇이 바쁜지 설렁설렁 겉흙만 적셔 놓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물은 그렇게 주는 게 아니고 듬뿍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자, 

2학년 형아를 만나 놀기로 했다며 물통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형을 만나 조금 놀고는 바로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물 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뜻이 담겨 있었지요.

그 친구 이름은 '동윤이'인데, 그토록 어리고 똑똑한 친구가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오늘날처럼 어린이가 귀한 시절에 말이지요.
요즘은 출산율이 많이 떨어지고 어린이가 귀해져 상대적으로 어린이의 복지가 많이 향상되었다지만,

어린이가 어른의 종속물 정도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지요.

그러한 시절에 아이들의 권리와 지위 향상을 위해 힘썼던 분이 있는데, 

바로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선생입니다. 

구한말에 태어나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일제 중반 무렵인 1931년에 세상을 뜨신 분이지요.

그분이 살았던 당시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어린아이의 인격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관심이 많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랬던 시절에 어린 '아이'라 비하되었던 아이들의 지칭(指稱)을 '이'라는

인격적인 존칭으로 높여 '어린이'란 말을 새롭게 만드신 분이 방정환 선생이지요.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여 어린이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 한껏 높여 준 분들은 

방정환 선생과 그분이 이끌었던 '색동회' 조직의 선각자들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슬픔을 모른다. 그리고 음울한 것을 싫어한다. 어느 때 보아도 유쾌하고 마음 편하게 논다. 

아무 델 건드려도 한없이 가진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나온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커간다. 뻗어나가는 힘! 뛰어노는 생명의 힘! 그것이 어린이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방정환, <어린이 예찬> 중에서

방정환 선생이 여타 독립운동가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오늘날에도 위인(偉人)으로서 존경받는 이유는, 

어른들에게 예속되었던 어린이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독립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각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어린이들의 인격적인 위상이 오늘날 많이 향상되었다 해도,

아직도 여러 면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린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학교 공부가 끝나면 쉴 틈 없이 여러 곳의 학원을 돌아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기껏 한두 시간 정도 틈이 날 수 있는데, 

이때에도 예전 아이들처럼 밖에 나가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 

방에 들어박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던 옛날 아이들보다 

어느 면으로서는 훨씬 더 불행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정환 선생의 동화 <만년샤쓰>는 

가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지요.

다 헤어져 남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낡은 셔츠를 입고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창남'이란 소년은 돈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강한 울림을 던져주는 존재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인격적인 위상이 높아진 환경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놀지도 못하고 노란 차에 실려 다시 학원으로 끌려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처한 슬픈 환경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자기만족과 경쟁심이 빚어낸 욕심으로 인해 

아이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의 자유마저 억압받고 있는 것이지요.

자유의 억압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각종 형태의 폭력, 학대, 방임 등도 실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부모의 이혼율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피 섞이지 않은 자녀에 대한 여러 형태의 학대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모든 어린이는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며, 

차별당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을 지표로 삼아,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 등을 전체 사회가 지켜주고 키워가야 한다."
 
<어린이 헌장> 전문(前文)처럼 밝고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어린이들이 

온갖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적인 틀에 짓눌려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오늘날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선/관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