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화문을 지나, 궁궐이 숨을 고르는 방식
창덕궁의 첫인상은 언제나 조용하다. 경복궁이 정면으로 말을 거는 궁궐이라면, 창덕궁은 옆자리에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궁궐이다. 돈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세계유산’이라는 수식어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기운이다. 궁궐인데도 긴장되지 않고, 왕의 집이었는데도 위압적이지 않다.
길은 반듯하지 않고, 건물은 똑바로 줄을 맞추지 않는다. 의도된 비대칭, 계산된 자연스러움. 조선의 궁궐이 모두 엄격한 질서 위에 세워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선입견은 이곳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창덕궁은 자연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언덕은 언덕대로 두고, 나무는 나무가 자란 방향을 존중한 채 그 사이에 전각을 얹어 놓았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걷는다’는 느낌보다 ‘들어간다’는 감각이 강하다. 숲 속으로, 시간 속으로,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세계유산이라는 명패보다 더 강한 설득력은 바로 이 편안함이다. 사람은 긴장보다 안정을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창덕궁은 알고 있는 듯하다.
인정전 마당에서 질서보다 균형을 보다
인정전 앞마당에 서면, 창덕궁이 추구한 궁궐의 철학이 또렷해진다. 이곳 역시 왕의 공식 공간이었고, 중요한 의식이 치러졌던 장소다. 그러나 그 무게는 경복궁의 근정전과는 결이 다르다. 웅장함보다는 단정함, 위엄보다는 절제에 가깝다.
인정전은 크지 않다. 대신 주변과 잘 어울린다. 건물 하나가 주변을 압도하지 않고, 마당 또한 지나치게 넓지 않다.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크기와 거리. 마치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왕의 권위도 이곳에서는 자연과 균형을 맞춘다. 하늘과 땅, 나무와 기와, 돌과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하나 튀지 않는다.
나는 마당 한쪽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새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지나간다. 수백 년 전에도 아마 비슷한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왕과 신하가 긴장된 얼굴로 서 있던 날에도, 이 바람은 불었고 새는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권력이라는 것도 결국 자연 앞에서는 잠시 머무는 손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창덕궁은 그 사실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보여준다.
후원에서 배운, 물러서는 아름다움
창덕궁의 진짜 얼굴은 후원에서 드러난다. 흔히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는 이 공간은, 사실 숨기기보다는 아껴 두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인위적으로 꾸민 정원이 아니라, 자연이 이미 만들어 놓은 풍경에 인간이 살짝 발을 얹은 곳.
연못은 둥글거나 네모나지 않고, 산의 형세를 따라 흐른다. 나무는 가지를 자랑하지 않고, 그늘을 먼저 내어준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굳이 더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그 말은 묘하게도 위로가 된다.
나는 한참을 걷다가 작은 정자에 앉았다. 벤치에 앉아 쉬는 관광객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든다. 사진을 찍다가도 손이 멈추고, 설명을 읽다가도 고개를 든다. 풍경 앞에서 인간은 설명자가 아니라 청자가 된다. 후원은 그렇게 사람을 낮은 자리로 초대한다.
이 궁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태도 때문일 것이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앞서려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 함께 가려는 자세. 창덕궁은 그 자세를 건축으로, 공간으로, 그리고 시간으로 남겼다.
창덕궁을 나서며 뒤돌아보았다. 화려한 장면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길의 굽이, 나무의 그림자, 그리고 걷는 동안 점점 느려진 내 호흡이었다. 이곳은 관람하는 궁궐이 아니라, 닮아가고 싶은 궁궐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꾸 반듯해지려 애쓰고, 더 크게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창덕궁은 말한다. 조금 비켜서도 괜찮고, 자연과 속도를 맞춰도 충분하다고. 그래서 이 궁궐을 다녀온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자연에게 한 발 양보한 궁궐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에도 자리를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