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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명수필18

윤여선의 土曜斷想 '내 친구 똑똑이' 토요단상土曜斷想 제184회 나이 차는 많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1년생인데, 무척 똑똑한 친구이지요.그가 태어나서부터 이웃으로 함께 살아오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 이제는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와 외출하고 돌아오다 집 가까이서 만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오지요. 그리고 이쪽 사정이나 형편은 살필 생각도 없이 앞장서서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핸드폰을 사 주었다며 자랑하다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해서 그의 전화기에 번호를 입력해 주었더니, 바로 전화를 하고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 놓으라고 지시하더군요.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공부도 하고, 영어 등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내 친구들도 잘 사귀는 .. 2025. 5. 18.
산정무한 -정비석- 다시 읽는 『산정무한』.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조용히 일렁인다.고등학교 국어 시간, 잊히지 않는 한 편의 글이 있었다. 정비석 선생님의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이다.처음엔 제목부터 낯설었다. ‘산정’도, ‘무한’도 쉽게 다가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말들이 지닌 결이 서서히 마음에 스민다. 글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더없이 꼭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필은 1941년, 정비석 선생이 금강산을 유람하며 남긴 기행문 중 한 대목이다. 『내금강 기행문』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연재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깊이 있는 장면을 골라 엮은 것이 『산정무한』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났던 글은 원문 그대로는 아니었다. 여정의 시작부터 내금강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은 일부 생략되.. 2025. 5. 11.
오월의 수필, 신록예찬 - 이양하 - 오월이다! 5월이면 생각나는 수필, 이양하의 푸른 수필 신록예찬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그러나 그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 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 2025. 5. 4.
오월 -피천득-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비늘잎도 연한 살결 같이 보드랍다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그러나 시월 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득료애정통고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실료애정통고 사랑을 잃음도 고통이다 젊어서 죽은 중국시인의 이 글귀를모래 위에 써 놓고,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어느.. 2025. 5. 1.
두부 장수 - 외솔 최현배 -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또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 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관훈방 청석골 정 소사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는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당장에는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 2025. 4. 27.
나무 -이양하-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산의 등줄기, 산등성이의 준말)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얻은 것이나 주어진 것이 적음)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 2025.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