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에 떨어진 낙엽이나 한라산을 구르는 낙엽이나 똑같을까?
제주로 이사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도시를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결론을 지금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 마음 한켠에 섬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이미 하나의 답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익숙한 풍경. 오래 살아온 동네의 숨소리 같은 것, 늘 지나던 길,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서로의 안색을 살피는 사람들. 특별할 것 없는 이 일상이 예전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떠나지 않았기에 익숙해진 장면들이다.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귤을 고르다 잠시 웃었다. 제주 귤이었다. 예전 같으면 산지부터 따졌을 텐데(우리나라 귤 산지는 다양하다. 완주 삼천포귤, 영덕 세계귤, 천안 타조귤, 낙서리 감귤, 대관령과 전북 진안의 귤)... 요즘은 그냥 한 박스에 몇 개가 들었는가 알의 굵기만 본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제주 갈등은 내일로 끝. 귤은 여전히 제주 것이 단단해서 골랐지.”
아내는 잠깐 귤을 이리저리 보더니.
“당신도 단단해, 고민쟁이 노인네.”
그 말에 괜히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체력은 포기하지 않는데 대한 격려 같은 것이었다.
제주에 살 때는 한 달에 백록담을 세 번 오르는 등신짓도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어느 산엔가를 오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전에는 정상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렸는데, 지금은 내려오는 상념을 더 즐긴다.
제주에서 배운 건 많다. 하지만 작년처럼 마음이 흔들리진 않는다. 그저 “그런 곳도 있었지” 하는 정도다. 바람이 세던 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오후,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하루를 접던 시간들. 슬리퍼 신고 숙소에서 10분만 걸어 나가면 용두암 해변의 석양을 자주 보았다.
제주는 정류장마다 버스 안내 전광판이 잘되어 있다. 차 없이 다니는 뚜벅이에겐 버스를 갈아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걸 못 맞추어 가려던 곳을 포기한 날도 여러 날이다. 그런 날엔 한라산을 갔다. 집에서 아니 어느 지역에서나 섬 중심에 빤히 보이는 곳. 한라산 정상.
그곳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곳이다. 거기서 집을 찾아 가는 길도 빤하다. 외지인에게 가장 편한 길. 오늘은 돈 좀 아껴볼까 한 날엔 한라산엘 올랐다. 교통비는 안 들지만 발품은 열 시간이나 팔아야 한다. 젊은이들은 여덟 시간에 오르내리지만 우리는 노인 아닌가. 더군다나 7학년은 없는 동네다.
그 동네를 향해 이삿짐 꾸리면 이번엔 아주 가는 것이다. 가도 잘 살 것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도 잘살고 있다는 확신. 그 둘은 몇 달간 나란히 놓여 있었다. 또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는 안도, 나는 결국 친구들을 택할 것 같고, 아내의 만류를 따를 것 같다. 그러다 내일 눈을 뜨면 획 돌아서서 혼자라도 떠나겠다고 떠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든 선택이 반드시 결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생각은 오래 품고 살아도 되고, 어떤 꿈은 마음속에만 두어도 충분하다는 것. 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오늘 하루를 글로 쓰고 있다. 그거면 된다.
내일도 문득 제주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지금 이 정도의 평온이면 충분하다. 지금의 사색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면, 굳이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금이 주는 만족이다.
새해부턴 '페이스북'을 해보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페북'을 통해서 꼭 찾아야 할 여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주는 만족감은 필경 과분한 행복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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