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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제주가 아닌 곳에서 써먹는 제주식 삶

by 휘주니 2025. 12. 29.

제주의 길과 바람

제주에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생활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였다. 여전히 같은 동네를 걷고,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집으로 돌아오지만, 예전처럼 하루를 꽉 채워 써야 한다는 조급함은 분명히 줄었다. 제주에 살지 않더라도, 제주에서 배운 방식으로 사는 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주가 아닌 곳에서? 제주가 아닌 곳을 그들은 '육지'라고 불렀다. 육지인도 제주도민이 되면 몇 가지 이점이 주어졌다. 그중 제일 큰 것이 경로우대 버스카드로서, 일반버스는 어디를 가나 하루 몇 번을 타든 공짜였다. 그래서 냉큼 옮기고 룰루랄라 있는데 도청에서 쪽지가 왔다. '차고지 증명을 제출하시오.'

 

"작은 하숙집에 주차장은 없고, 나는 혼자 여행 온 것입니다."

"차가 지금 육지에 있다는 사진을 제출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차가 과천시청 앞에서 찍힌 사진을 제출하여 해결했지만, 공무원이 쓴 '육지'라는 단어가 신기했다.

나는 과천에서 온 게 아니라, '육지'에서 온 남자였다.  

 

육지의 남자에게 제주의 하루는 단순했다. 날씨가 좋으면 나가고, 바람이 세면 쉬었다. 날씨 때문에 어그러진 계획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 기준을 육지로 가져오니 한결 편해졌다. 몸이 무겁다면 무리하지 않고, 하려 했던 일을 하나 줄인다. 젊었을 땐 이런 선택을 게으름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자기 관리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나 줄이기, 이 나이에 배운 중요한 습관이다. 그러나 운동에선 게으름이라 여긴다.

 

올해 12월 초순엔 백운대를 세 번 올랐다. 세 번째 등반은 아내와 함께 했는데 '자랑질'의 재료로 쓰지 않았겠는가. 날씨가 좋은 날엔 테니스장에 간다. 산과 테니스장에서 아내의 실력은 짱짱하다. 그때마다 중얼거린다. '후후 잘 키운 아내 하나, 열 파트너 부럽지 않다.' 팔순 때에도 같은 파트너십이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근슬쩍 하늘을 본다.

 

말수도 줄었다. 제주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말 대신 바람이 지나가고,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육지로 돌아와서도 그 습관이 남았다. 모든 일에 의견을 보태지 않고, 굳이 결론을 서둘러 내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줄어든다는 건, 생각이 줄어서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된다.

 

관계 역시 달라졌다. 친구를 새로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관계를 조금 더 잘 들여다보게 됐다. 안부를 묻되 캐묻지 않고, 도움을 주되 앞서지 않는다. 제주에서 만난 이주민들이 말하던 ‘거리의 예의’가 이런 것이었을까 싶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그 적당함이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든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소비도 단순해졌다. 제주에서는 살 게 많지 않았고, 없어도 지낼 수 있었다. 그 기억 덕분에 돌아와서도 뭐 하나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정말 필요한지, 없으면 안 되는지. 이 나이에 집을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섬은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오늘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오늘 얼마나 무리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 큰 성취보다 작은 무사함이 더 귀해졌다.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었다.

 

제주로 이주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주가 내 삶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섬은 내 일상 깊숙이 스며 있다. 급하지 않게 걷는 법, 덜 채우는 법, 결론을 미루는 법을 제주에게 배웠다.

 

어쩌면 이주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디에 사느냐보다, 하루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나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제주가 아닌 곳에서, 제주식으로 산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고, 그만큼이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배철수의 '세상모르고.....'도 잘 살고 있다는 뜻 아닐까 // <가로보기>는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