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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 남쪽 바다의 밥상이 펼쳐지는 곳

by 휘주니 2025. 12. 9.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

   

   제주에 가면 바다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귀로는 파도 소리를 듣고, 손으로는 바람을 만지고, 그리고 입으로는 그 바다를 맛본다. 그 모든 감각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나는 곳이 있다. 바로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이다. 이름부터 구수하다. “매일”이라니, 이곳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람들에게 먹거리와 풍경을 선물한다는 뜻이리라.


시장 입구, 오감의 축제가 열리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자극하는 건 기름 냄새다. 막 튀겨낸 고등어튀김이 고소한 연기를 내뿜고, 옆집에서는 한라봉을 짜낸 주스가 상큼한 향을 퍼뜨린다. 귀는 시끌벅적하다. 상인들의 목소리는 활기찬 응원가 같고, 관광객들의 웃음은 그 위에 화음을 얹는다. 발걸음이 멈출 수가 없다.
 “은갈치! 은갈치 싱싱해요!”
 “한치, 오늘 새벽에 잡은 거예요!”
 호객 소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장의 랩 배틀이다. 그 리듬에 이끌려 나는 어느새 갈치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은갈치, 남쪽 바다의 은빛 칼
 제주 은갈치는 이미 전국구 스타다. 길게 뻗은 몸통은 은빛이 번쩍여, 마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검 같다. “갈치조림은 밥도둑이죠”라며 상인이 껄껄 웃는데, 나는 속으로 “사실은 밥 강도 수준 아닌가요?” 하고 맞장구쳤다. 한 번 젓가락을 대면 밥그릇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리니 말이다.
 시식으로 내어준 갈치구이를 한 입 베어 물자, 살결이 하얗게 풀렸다. 바다의 소금기가 은근히 스며든 맛. 서울 마트에서 본 갈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이었다. 서울 갈치가 졸업사진 속의 내 모습이라면, 제주 은갈치는 웨딩사진 속의 ‘필터 200% 먹인’ 내 모습 같았다. 같은 나지만 전혀 다른 아우라다.


한치, 바다의 하얀 춤꾼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치가 기다린다. 오징어와 닮았지만 몸집이 더 단단하고, 맛은 훨씬 담백하다. 상인은 오늘 새벽 3시에 잡아 올렸다고 했다. “밤바다 불빛에 한치가 몰려와요. 그 순간은 바다 속 불꽃놀이 같죠.”


 나는 순간 상상이 되었다. 어두운 바다에 불빛이 켜지고, 그 불빛 따라 흰 몸들이 춤추듯 모여드는 장면. 그래서인지 한치회 한 점을 입에 넣자, 쫄깃한 식감 사이로 바다의 야경이 씹히는 듯했다. 초장에 푹 찍어 먹으니 이건 단순한 안주가 아니라 시 한 편이었다. 다만 문제는, 곁들이는 맥주 생각이 간절해져 시장 한복판에서 괜히 목이 더 말라졌다는 것.

고등어와 옥돔, 일상의 별미
 갈치와 한치가 ‘주연 배우’라면, 고등어와 옥돔은 ‘든든한 조연 배우’다. 고등어는 우리 식탁의 국민 배우라 할 수 있다. 서귀포 시장의 고등어는 유난히 통통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고등어는 기름기가 번들번들하다. 상인은 “이걸로 고등어조림 하면 가족 싸움 나요. 살 많은 쪽을 누가 먹느냐 때문에”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옥돔. 제주사람들에게는 잔칫날 빠질 수 없는 생선이다. 옥돔구이를 한입 베어 무니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입 안에서 합창을 했다. 순간, 나는 ‘이거야말로 바다의 합창단장’이라 생각했다. 관광객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서울에서 먹던 옥돔은 왜 이렇게 초라했지?”라는 감탄사에, 나도 모르게 끄덕였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공존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은 관광객만의 공간이 아니다. 시장 한쪽에서는 현지인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생선을 고른다. “오늘 저녁은 갈치조림으로 할까, 고등어구이로 할까”라며 대화하는 소리가 정겹다.  관광객은 기념품을 사고, 현지인은 생선을 사고. 서로 목적은 달라도 발걸음은 같은 시장 안에 모인다. 그 모습은 묘하게 따뜻했다. 마치 큰 식탁에 모여 앉아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도 같은 공간을 나누는 가족 같았다.

 시장을 걷다 보면 유쾌한 해프닝도 생긴다. 한라봉 주스 샘플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아이가 갑자기 “엄마, 이거 오렌지 아니야? 왜 속여?”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상인은 웃으며 “오렌지보다 훨씬 귀한 거야. 이건 제주 한라봉이지!” 하고 설명했다. 그 장면에서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결국 아이는 주스를 한 잔 더 얻어 마셨다.


 또 한 번은 갈치 포장 코너에서 봉지가 터져 은빛 살이 반짝하며 튀어나왔다. 나는 순간 ‘바다가 탈출을 시도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허둥댔다. 상인은 능숙하게 갈치를 다시 포장하며 “얘네는 아직도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가 봐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 재치에 모두가 웃었다.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제주 바다의 축소판이자,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마당이다. 갈치와 한치, 고등어와 옥돔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이 섬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웃음, 정겨운 말투, 때로는 장난스러운 흥정까지. 골목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나오고, 어느새 나도 이곳 사람들과 같은 숨결을 느끼고 있다. 시장은 단순한 상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주의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작은 극장이다.


오후가 되면 시장의 분위기는 또 다르게 바뀐다. 햇살이 골목 사이로 길게 드리워지고, 상인들은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한다. 생선가게의 은갈치는 조금 줄었고, 남은 옥돔과 한치는 저녁 식탁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놓여 있다. 나는 시장 끝자락에서 바닷가 쪽으로 나와, 낮게 깔린 바다빛을 바라본다. 시장에서의 풍경과 바다의 풍경이 겹쳐지면서, 마음속 깊이 잔잔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올레시장을 나설 때 나는 항상 느낀다. 여행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풍경도 좋지만, 매일 반복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찾는 생생함과 따스함이야말로 진짜 여행의 맛이라는 것을. 다음에 올 때는 또 어떤 제철 생선과 과일이 나를 맞이할지, 그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관광객은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현지인은 일상의 식탁을 채운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곳에 오지만, 시장을 나설 때는 모두 같은 미소를 짓는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마음이 풍족해져서다.


 혹시 제주를 여행한다면, 바다를 눈으로만 보지 말고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에서 입으로도 담아가 보라. 은갈치의 은빛, 한치의 춤, 고등어의 기름진 웃음, 옥돔의 합창.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여행 가방 속에 ‘제주다운 제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집에서 고등어를 구워 먹을 때, 문득 시장에서의 소란스러운 웃음과 따뜻한 호객 소리가 함께 떠오를 것이다.

   그때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아, 내가 그때 제주를 진짜 맛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