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바람이 먼저 맞아준 마을 입구
가을 햇살이 살짝 누그러진 날, 아내와 나는 왕곡마을로 향했다. 속초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길은 묘하게 과거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네비게이션은 분명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눈앞 풍경은 마치 조선 시대 어느 시골마을 같았다.
돌담길 옆으론 억새가 흔들리고, 초가지붕 위엔 까치 한 마리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여보, 여기 공기부터 다르네요.”
아내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나는 웃었다.
“그러게, 이 공기 팔면 돈 될까?”
왕곡마을은 북방식 한옥이 그대로 남은 몇 안 되는 전통마을이라 했다. 남쪽의 기와집과 달리, 이곳 집들은 나무판을 겹겹이 얹은 ‘너와집’이 많다. 비나 눈이 많은 강원도 날씨에 맞춘 지혜랄까. 나는 손으로 너와지붕을 살짝 만져보았다. 거칠지만 따뜻했다. 흙 냄새, 나무 냄새, 그리고 오래된 사람 냄새가 한꺼번에 섞여 들었다.
아내는 돌담길 사이로 핀 구절초를 바라보며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여기선 인물보다 배경이 주인공이에요.”
그 말이 참 맞았다. 요즘은 사람보다 풍경이, 말보다 침묵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나이 들수록 사진 속의 나보다는, 사진 너머의 공기가 더 그립게 남는다.
너와지붕 아래, 200년의 시간과 마주하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한옥 체험관에 들어섰다. 마당 한켠엔 장독대가, 안채에는 오래된 가마솥이 그대로 있었다. 아내는 장독대 뚜껑을 살짝 들어보더니 “된장 냄새가 살아 있네요” 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햇빛처럼 퍼졌다.
마을 해설사분이 말했다.
“이 마을은 600년 넘게 이어져 온 곳이에요. 조선 후기 때부터 이 근처에 살던 함씨, 이씨, 최씨 가문이 대를 이어 살고 있습니다.”
600년이라니.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한평생 살아도 그 긴 세월의 한 조각도 되지 못하는데, 이 마을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니.
“우린 40년 결혼생활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초단기네요.”
아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해설사도 웃었다.
“그래도 두 분은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오래된 마을은 그런 분들이 지켜주는 거예요.”
그 말에 아내가 내 팔을 살짝 꼈다.
젊을 때는 몰랐다. 여행이란,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걸.
왕곡마을의 오래된 기둥과 너와지붕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듯했다.
“시간은 흘러도 따뜻하게 남을 수 있다”는, 말 없는 위로처럼.
장작냄새 속에서 되살아난 ‘옛날의 오늘’
마을 끝자락의 전통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작불에 끓인 된장찌개, 직접 만든 묵, 그리고 배추전이 상 위에 올랐다.
“이 맛은, 젊을 때 어머님이 해주신 그 된장이네요.”
아내가 한입 먹고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엔 밥 한 끼가 이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지금은 밥보다, 그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안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한켠에서 아낙들이 감을 깎고 있었다. 감빛이 햇살에 반사되어 마을 전체가 주황색으로 물든 듯했다. 그 옆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웃었다.
웃음소리에 묘하게 풀린 마음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지만, 왕곡마을의 시계는 분명 다르게 흐른다.
느릿하지만 멈추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시간.
아내와 나는 마을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멈췄다. 돌담 너머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억새를 흔들었다.
“여보, 오늘은 그냥 이대로 좋네요.”
“응, 이런 날이 자주 오면 좋지.”
“그러면 또 자주 여행 가야겠네요.”
그 말에 나는 슬며시 웃었다.
그래,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 여유 아닐까.
목적지보다 ‘같이 걷는 길’이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마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오늘 하루, 참 길었어요. 그런데 짧았어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내 손 위로 포근히 내려앉았다.
왕곡마을의 햇살이 그 손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의 기억도 오래된 집처럼, 우리 마음에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