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여행을 여러 번 다녀본 이라면 한 번쯤은 주상절리대를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상절리대 봤다”는 말은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데, 정작 기억 속 풍경은 흐릿하다. 아마도 검은 돌기둥들이 일렬로 서 있는 광경이 압도적이긴 한데, 사람이 그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 배경이 너무 어둡게 나와서 SNS에 올리기 애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진첩 속에서 잊히고, 여행의 주인공은 언제나 바다나 흑돼지 삼겹살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나 이번 가을, 나는 주상절리대를 달리 보기로 했다. 삼겹살보다 더 기름지고, 감귤보다 더 상큼한 시선으로. ‘바위 기둥도 사실은 패션쇼 런웨이에 선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상상을 품고 말이다.
기둥의 정렬, 자연의 건축술
주상절리대에 서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걸 도대체 누가 쌓아 올렸을까?”이다. 기둥들이 동무들처럼 솟아올라 절벽을 이룬 모습은 마치 어느 건축가가 레고 블록을 정성껏 끼워 맞춘 것 같다. 사실은 화산이 분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식을 때, 수축하는 힘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하는데, 과학적 설명은 그냥 담백하다고 할까. 그러나 눈앞의 풍경은 담백이 아니라 농도가 짙다.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압축된 돌기둥들이 파도에 씻기며 여전히 반짝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괜한 상상을 했다. 만약 이 절벽 위에서 누군가 “땅따먹기” 게임을 시작하면 어떨까? 발 디딜 틈마다 돌기둥이 줄을 서 있으니, 규칙을 지키지 않고선 단 한 칸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곳에서는 인간의 장난이 통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만이 압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파도는 박수를 치고, 바람은 반주를 한다
주상절리대에서 가장 근사한 순간은, 단순히 바위를 보는 게 아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쾅쾅’ 소리, 바람이 그 사이를 파고들며 만드는 ‘휘잉’ 소리가 합쳐져서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울림을 만든다. 나는 그것을 “자연의 드럼 세션”이라고 부르고 싶다.
관람객들은 그 소리에 맞춰 “와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 장면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돌기둥들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가수들이고, 파도는 열광적인 팬클럽, 바람은 반주를 담당하는 밴드다. 가을 하늘은 조명처럼 청명하게 그들의 무대를 비춘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순간 주상절리대가 더 이상 돌멩이 덩어리가 아니었다. 한 편의 쇼였다.
가을 하늘과 맞닿은 풍경
제주 바다는 계절마다 색을 달리 입는다. 여름의 바다는 짙은 청록빛이고, 겨울은 잿빛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가을의 바다는 묘하게 단정하다. 햇살은 따갑지 않고, 하늘은 높고 투명해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그 하늘과 맞닿은 검은 돌기둥 절벽은 마치 하얀 셔츠 위에 매단 검은 넥타이 같다. 군더더기 없는 단정함, 그러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나는 절벽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게 바로 자연의 미니멀리즘이구나.’ 요즘 카페 인테리어며 패션이며 “미니멀리즘”을 외치지만, 그건 결국 자연 앞에서 배워온 흉내에 불과하다. 수천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돌기둥 앞에서, 인간의 ‘미니멀’은 그냥 ‘작은 흉내’일 뿐이다.
걷기에 좋은 명소, 그러나 발밑 주의
주상절리대의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울타리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데, 가을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흩날릴 때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는 사진 찍을 때다.
나는 셀카를 찍다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관광객에게 민망한 인사를 하며 모자를 주워야 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그래도 새로 산 모잔데요…’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작은 해프닝도 결국 여행의 한 페이지가 된다.
또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바닷바람이 강하니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우아하게 찍은 사진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머리카락이 눈을 덮은 해변의 철학자” 콘셉트로 찍으면 나름 예술성이 있어 보일 수 있다.
해산물과의 만남
주상절리대 근처에는 해산물을 파는 작은 노점이 줄지어 있다. 성게, 해삼, 전복 등 제주 바다의 힘이 그대로 담긴 음식들이다. 사실 나는 해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질감이 미묘하고, 씹을 때마다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나?”라는 의문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닷바람에 취해 용감하게 한 점 집어 들었다.
입안에 퍼지는 바다 향은 강렬했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옆에 있던 여행객이 “이 맛은 한 번 먹어본 사람만 안다”라고 했는데, 나는 속으로 ‘맞아요’ 하고 웃었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바로 여행의 묘미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로 남기는 것.
주상절리대에서 보낸 오후는, 단순히 경치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나의 감각을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건물의 직선과 도로의 질서 속에서 길들여진다. 그러나 이곳의 직선은 사람이 그은 선이 아니라, 자연이 그려낸 선이다. 그 차이를 느끼는 순간, 가슴 속이 시원하게 열리는 듯하다.
나는 절벽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바람에 머리는 엉망이었지만, 사진 속 배경은 거대했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고 “저기 어디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아, 저건 돌기둥들의 패션쇼 무대야. 모델들이 수천 년째 서 있는 거지.”
가을 하늘 아래의 주상절리대는 웅장하면서도 유쾌하다. 파도와 바람이 연주하는 음악은 잊을 수 없고, 검은 돌기둥들이 늘어선 풍경은 어떤 장엄한 성당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여기에 약간의 유머와 상상력을 얹으면, 여행의 기억은 훨씬 오래 남는다. 무엇보다도, 주상절리대에서 느낀 감동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잡아내지 못하는 공기의 울림, 바다 소금기 섞인 향기, 그리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까지 모두 합쳐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니 이곳은 단순히 ‘찍고 가는 명소’가 아니라 ‘머물며 듣는 공간’이다.
혹시 인생이 지루하게만 느껴질 때, 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돌덩이처럼 무겁게만 다가올 때, 주상절리대를 찾아와 보길 권한다. 수천 년 동안 묵묵히 서 있던 그 돌기둥들은 말없이 이렇게 전할 것이다.
“걱정 마라, 우리도 수많은 파도에 부딪히며 여전히 서 있지 않느냐. 너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제주 여행 계획을 묻거든, 이렇게 말해주자.
“흑돼지 맛집도 좋지만, 주상절리대에서 파도의 드럼 소리를 들어봐. 그게 진짜 제주 공연장이야.”
그리고 꼭 덧붙이자.
“단, 모자는 잘 챙겨. 바람이 가져가 버리면, 아무리 가치 없는 것이라도 아쉬움이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