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한라산을 중심으로 마치 봉긋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오른 360여 개의 작은 산들.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와 빛깔, 그리고 이름이 제주의 바람과 햇살 속에 어우러져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성산일출봉이나 용눈이오름 같은 유명한 오름의 정상에서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며 감탄사를 쏟아내지만, 내게 오름은 그저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때로는 현자처럼 침묵하며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 특히나 발길 닿기 힘든, 혹은 이름조차 생경한 덜 알려진 오름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의 시작점이 되어주곤 한다. 북적이는 인파와 시끌벅적한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서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에 집중한다.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내 삶의 무게도 발걸음의 가벼움에 실려 날아가 버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지. 오늘은 또 어떤 오름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까.

숨겨진 능선, 잊힌 시간들
내가 주로 찾는 오름들은 사람의 흔적이 희미한 곳들이다. 입구에는 안내 표지판조차 변변치 않고, 잘 닦인 탐방로는 기대할 수도 없는. 그저 풀들이 우거진 옛길을 더듬어 오르거나, 때로는 내 발길이 곧 길이 되는 그런 오름들을 선호한다. 이런 오름을 찾아가는 여정부터가 고독하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헤치고 들어가야 한다.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고, 넝쿨이 발목을 감싸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도시의 소음은 저만치 멀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숲 속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내 심장의 고동 소리만이 온전히 들려오는 순간을 마주한다.
이런 오름의 능선은 비록 낮고 완만할지라도, 오르는 내내 나에게 어떤 시험을 던지는 듯하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을 밟고 오르다 보면 잊고 지냈던 시간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문득 도시에서 보냈던 지난날의 번잡함과 초조함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닫는다. 스마트폰 속의 알림은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 않고, 끊임없이 '빨리빨리'를 외치던 내 안의 시계도 느슨하게 풀린다. 이 숨겨진 오름들은 사람의 욕심이 닿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 그 자체로 고즈넉한 명상이 된다. 정겹게 마주하는 소나무의 굳건함, 바위에 뿌리를 내린 강인한 잡초들,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이 느릿한 걸음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잊혀진 시간의 의미와 마주하게 된다.
고독 속의 울림, 내면과의 대화
그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다가도,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펼쳐지는 풍경은 언제나 나를 압도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의 다른 오름들이 겹겹이 이룬 능선들과 그 너머로 아득히 펼쳐진 바다, 그리고 구름이 춤추는 하늘은 그 어떤 명화보다 아름답다. 땀으로 축축한 등줄기에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생생함을 느낀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면의 고요함'이 찾아드는 순간이다. 소음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홀로 앉아 먼 풍경을 응시하노라면, 삶의 갖가지 질문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살아왔던가.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었나. 어떠한 미련 때문에 그토록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가. 바람은 내 곁을 스치며 이 질문들에 답하듯 속삭인다. 때로는 잊고 지냈던 옛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막연했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고독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지친 영혼이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시간이다. 오름 정상에서의 고독은 나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되어주는 듯하다. 이 깊은 울림 속에서 나는 껍데기를 벗겨내고 진정한 나를 마주한다.
내려오는 길도 새로운 발걸음
정상에서의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가벼워져 있음을 느낀다.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주변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보지 못했던 작은 풀 한 포기, 미처 듣지 못했던 새의 지저귐이 새롭게 다가온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준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속도나 높이가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모든 오름이 정상에 닿아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 삶의 매 순간이 곧 오름의 일부.
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세속의 공간으로 돌아갈 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무거웠던 마음의 짐이 홀가분해진 것을 깨닫는다.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훨씬 더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변화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처럼 덜 알려진 오름에서의 고독한 여정은 나에게 비단 육체적인 휴식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와 성장의 과정이며,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귀한 수행이다.
이번 여행의 특징 중에 하나는 백록담을 한 달 새 세 번 오른 것. 체중감량이 목표였고 오름의 감회도 이 글과는 달라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오름이 주는 운동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정서적인 정화보다 크다고 해서 흠이 되랴. 우열을 가릴 수도 없고 가릴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낡았지만 익숙한 등산화 끈을 굳게 동여매고 오름을 찾아 나선다.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때로는 이름 없는 들풀이 우거진 작은 숲길을 헤치고 들어갈 것이다. 그 고요한 길 위에서 나는 바람과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투박한 돌멩이와 촉촉한 흙에서 전해지는 땅의 속삭임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마침내 내 안의 가장 깊고 진정한 자아와 오롯이 마주하는 경건한 시간을 찾는다.

도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현대인의 삶은 소음과 번잡함, 그리고 무한 경쟁으로 가득하지만, 오름의 고요한 품속에서라면 이 모든 번뇌와 속된 욕망은 한순간 정지하는 듯하다. 세상의 소음과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면의 가장 깊숙한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북적이는 세상의 한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나만의 고요한 샘을 찾아내고, 뜻밖의 풍경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속에서 다시금 삶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단순한 자연의 숨결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나의 상처와 고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위로이며, 때로는 차가운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 보이듯 나약한 마음을 다잡아 주는 준엄한 격려이기도 하다. 그리고 땅의 속삭임은 허황된 이론이 아닌, 삶의 깊은 진리와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전해주는 은밀하고도 원초적인 가르침이다.

매번 오름을 오르는 발걸음은 비단 육체적인 단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땀 흘려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갖게 되고, 저 아래 세상을 조망하는 시야만큼이나 넓은 포용력과 통찰력을 지니게 됨을 느낀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고독은 결코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이며, 세상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한다.

이처럼 오름은 나에게 단순한 지형의 일부가 아니다. 제주의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수천, 수만 년을 버텨온 묵묵한 존재로서, 내 삶의 굽이마다 지혜를 가르쳐주는 소중한 스승들. 그들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이자, 지친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영원한 쉼터이며,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는 가장 고결한 안내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묵묵한 스승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다시 한번 그 숭고한 길을 걸어 나아간다.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의 오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