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 따라 달라지는 색달해변의 표정
제주 중문 색달해변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해변이다. 여름 성수기에는 해수욕을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이며, 아이들이 튜브를 끌고 파도에 몸을 맡긴다. 9월 초까지는 여전히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어,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변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햇볕에 모래사장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파도는 장난기 어린 아이처럼 가볍게 사람들을 밀어낸다. 해변 입구에는 차양막과 파라솔이 늘어서고, 여름의 열기는 그곳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9월 중순이 넘어가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제는 수영복 대신 가벼운 바람막이를 걸치고, 모래 위를 천천히 거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여름 내내 인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다 본연의 푸른 색감이 드러나고, 파도 소리는 한층 더 선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이때의 색달해변은 차분하면서도 자유롭다. 아무렇게나 던져둔 발자국은 금세 파도에 지워지고, 남는 것은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 묻힌 사색뿐이다.
나는 이 시기의 색달해변을 특히 좋아한다. 더 이상 인파에 치이지 않고, 바다의 숨결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모래 속에 반쯤 묻힌 조개껍질이 반짝이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맞춰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계절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여름의 활기와 가을의 고요, 그 두 얼굴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색달해변이다.
서퍼들이 사랑하는 파도의 무대
색달해변은 파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수영을 즐기기에는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서퍼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가 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곳곳에서 보드를 끌고 나오는 서퍼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검은 웨트슈트를 입고 파도 너머로 나아가며, 물살을 가르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파도가 높게 밀려올 때, 서퍼는 순간적으로 보드 위에 몸을 일으킨다. 파도의 곡선을 따라 몸을 실은 채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뛰게 만든다. 이내 파도가 꺼지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다음 파도를 기다린다. 단 몇 초간의 짜릿함을 위해, 그들은 몇 번이고 바다와 맞선다.
나는 서핑을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느낀다. 서핑은 단순히 파도를 타는 운동이 아니라, 바다와 인간이 맺는 대화 같다. 파도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그 흐름 위에 몸을 맡기며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파도는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퍼들은 포기하지 않고 파도에 몸을 싣는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인생의 파도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르고, 때로는 휘청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은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몸을 싣고, 균형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핑은 바다 위의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인생을 닮은 은유다. 그래서인지 색달해변에서 서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도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곳은 제주 안에서도 ‘서핑 입문지’로 유명하다. 전문 강사들이 운영하는 작은 서핑 스쿨들이 해변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초보자들도 도전해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이른 아침부터 강습을 받으려는 이들로 북적이는데, 그 중에는 20대 젊은이뿐 아니라 40~50대 중년 부부도 있다. “한번쯤은 바다 위를 달려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이곳에서는 현실이 된다.
바다 향 가득한 노천식당의 해삼 한 접시
색달해변의 또 다른 매력은 해변 입구에 자리한 노천식당이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하고 허름한 간이식당이지만, 그곳에서 맛보는 음식은 제주 바다 그 자체다. 수조 안에는 해삼, 전복, 소라, 오징어가 살아 움직이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꺼내 신선하게 손질해준다.
특히 해삼은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울퉁불퉁한 겉모습에 처음엔 망설여지지만,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고소하면서도 바다의 깊은 향이 퍼져 나온다.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배어나오고, 차가운 소주 한 잔과 함께라면 금세 제주다운 한상이 완성된다.
나는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색달해변 노천식당에 앉아 해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바닷바람이 거칠게 불어 머리칼이 흩날렸고, 파도가 가까이서 부서지는 소리가 식사 내내 들려왔다. 그 순간은 마치 바다가 한 그릇 음식이 되어 내 앞에 놓인 듯한 경험이었다.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느낄 수 없는, 바다와 맞닿은 생생한 풍경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해삼을 씹을 때마다 바다의 향이 살아났고, 모래사장에 발을 묻고 앉아 있다는 불편함조차도 맛의 일부가 되었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은 흔치 않다. 값비싼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자연과 맞닿은 자리에서 맛본 한 접시는 평생 기억된다.
색달해변의 노천식당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여행자에게 제주 바다의 삶을 맛보게 하고, 파도와 모래 사이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이다. 해삼 한 접시는 결국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바다와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이자, 제주만의 특별한 감각을 각인시키는 순간이다.
중문 색달해변은 단순한 해수욕장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 물놀이와 산책의 즐거움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서퍼들에게는 삶의 무대가 되고, 여행자에게는 노천식당의 해삼 한 접시로 추억을 남긴다. 여름의 열기, 가을의 고요, 파도의 도전, 그리고 바다 향 가득한 식탁.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색달해변은 언제 찾아도 특별한 경험을 준다.
나는 종종 여행을 떠올릴 때, 풍경보다 그 속에서 맛본 음식이나 우연히 만난 장면을 먼저 기억한다. 색달해변 역시 그렇다. 파도에 몸을 실은 서퍼들의 모습, 노천식당에서 맛본 해삼의 쌉싸래한 향, 그리고 모래 위를 걷던 발걸음. 이 모든 것이 모여 내 기억 속의 색달해변을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 제주에 간다 하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한다. “중문 색달해변에 가보세요. 파도와 바람, 그리고 해삼 한 접시가 당신의 여행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꿔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