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것들을 버린다. 종이 한 장, 깨진 그릇, 낡은 옷, 더는 쓸모 없어진 물건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어떤 것은 기억의 한 자락에 머물러 다시 빛난다. 나는 그것을 ‘두 번째 삶’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은 내가 걸어오며, 살아오며 마주친 버려진 것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종이와 책이 남기는 흔적
아침에 우편함을 열면, 전단지와 광고지가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은 곧장 휴지통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종이들이 모두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나무였고, 햇빛을 머금고 자라던 생명이었다. 그것이 잘려 나와 종이가 되었고, 다시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스쳐 지나가며 버리지만, 누군가는 다시 그 종이를 접어 작은 메모지를 만들고, 책갈피로도 쓴다.
내 책상 서랍에는 오래된 신문지 조각이 몇 장 남아 있다. 젊은 시절 원고를 묶을 때 포장지로 쓰던 것들이다. 잉크가 바랜 글자 속에는 이미 지나간 사건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글자보다도 신문지가 지닌 시간의 냄새에 마음이 끌린다. 버려진 종이가 내 기억을 묶고, 나의 지난날을 다시 불러낸다. 종이는 단순히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삶을 붙잡아 주는 끈이 된다.
책 역시 그렇다. 낡고 찢어진 책은 헌책방 한 구석에 버려지듯 놓여 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책을 다시 집어 들면, 이야기는 다시 살아난다. 한 번 읽힌 문장도 두 번째 독자에게는 새롭게 태어난다. 책의 두 번째 삶은 독자가 바뀌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렇게 글자들은 죽지 않고 세월을 넘어 이어진다.
사물의 변신, 일상의 재생
나는 오래된 유리병을 버리지 못한다. 물병으로 쓰이다가, 잼을 담던 병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꽃 한 송이를 꽂아두는 작은 꽃병이 되었다. 깨끗이 씻어 햇빛이 드는 창가에 놓으면, 유리병은 더 이상 ‘버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식품이 된다. 그것은 작은 변신이지만, 사물은 그렇게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낡은 옷도 마찬가지다. 입기엔 해져 버렸지만, 걸레로 쓰거나 조각을 내어 이불 안쪽에 덧댄다. 몸에 닿던 따뜻함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때는 내 몸을 감싸던 천이 이제는 집을 지키고, 바닥을 닦고, 일상의 구석을 살린다. 나는 그 속에서 ‘쓸모없음’이라는 말의 허망함을 배운다. 정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세상에 드물다.
심지어 음식물조차도 그렇다. 부엌에서 나온 채소 껍질과 남은 밥풀은 퇴비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그 흙은 다시 꽃과 나무를 키운다. 우리가 버렸다고 생각한 음식은 결국 다른 생명을 살리는 밑거름이 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버려지는 것들의 위대한 순환이라고 믿는다.
어느 날 골목을 걷다 보니, 버려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부러져 방치된 나무 의자였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을 손봐 작은 화분 받침대로 다시 세워 두었다. 그 위에서 꽃이 자라고 있었다. 의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앉는 용도는 아니었지만, 꽃을 높이 들어 올려 햇빛을 더 받게 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쓸모없음’이라 단정했던 것이 어떻게 다시 빛나는가를 그 의자가 보여주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것들
버려진 것이 꼭 물질만은 아니다. 때로는 사진, 편지, 목소리 같은 기억도 잊히며 버려진다. 그러나 그 기억들 역시 뜻밖의 순간에 다시 삶을 얻는다. 나는 오래전 편지 한 장을 책 속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글씨는 번져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편지를 쓰던 사람의 얼굴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잠시 읽고 덮어두었던 글이었지만,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났을 때 그 편지는 새로운 의미를 지녔다. 버려진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피어난 것이다.
또한 오래된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잊었다고 생각한 젊은 날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멀리 떠나간 친구의 웃음소리, 부모님이 부엌에서 흥얼거리던 가락, 모두 사라진 듯했지만 음악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기억은 버려지는 듯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든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첩 속에서 빛바랜 흑백 사진을 꺼내면, 나는 젊은 날의 내 얼굴과 마주한다. 그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희망과 두려움이 사진 속 눈빛에 담겨 있다. 당시에는 버린 듯 지나간 청춘이지만, 사진 한 장으로 청춘은 두 번째 삶을 얻는다. 그 기억은 나를 위로하고,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두 번째 삶
버려지는 것들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의 삶과 겹쳐진다. 젊은 날의 직장을 떠나고, 사회에서 물러나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간, 새로운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노년의 시간을 살아가며 깨닫는다. 젊었을 때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미처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이제는 귀에 선명하다. 예전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이웃과의 대화가 지금은 하루를 밝히는 빛이 된다. 마치 낡은 의자가 화분을 떠받치듯, 나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의 두 번째 삶이다.
또한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책과 같은 두 번째 생명을 얻는다. 한 번 살았던 경험이 새로운 귀를 만나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흘려보낸 이야기도, 지금은 소중한 지혜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남는다. 그렇게 사람도 또 다른 존재에게 이어지며 계속 살아간다.
버려지는 것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사실 끝은 없다. 종이는 메모지가 되고, 유리병은 꽃병이 되고, 기억은 추억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것들이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숨을 쉰다. 나 역시 그렇다. 한때는 세상에서 물러난 듯 느껴졌지만, 지금은 글을 통해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버려진 것들의 두 번째 삶을 바라보며, 내 삶의 두 번째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사물은 변신을 통해 새로워지고, 사람은 경험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것 하나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버려진 것 속에서 나는 내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글 또한 누군가에게 두 번째 삶을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