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숨' 같은 공간
제주는 언제고 그리운 이름입니다. 섬이라기보다는, 뭍에서 닳고 닳은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숨' 같은 공간이랄까요. 그 수많은 제주 속에서도 중문색달해변은 제게 특히나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처음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마치 오래된 서재에서 먼지 쌓인 고서를 펼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전율과도 같았습니다. 눈과 귀, 그리고 발바닥까지, 오감이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온전한 '지금'을 경험하게 하는 곳. 중문은 제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제주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속엔 늘 중문해변을 거닐던 저의 발걸음이 먼저 앞서가곤 했으니 말입니다.
시간이 빚은 모래, 그 위에 드리운 고요 여느 해변의 고운 백사장만을 상상하고 중문에 도착한다면, 아마 적잖이 놀라실 겁니다. 이곳의 모래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순백의 모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검은빛과 회색빛이 오묘하게 뒤섞여, 마치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린 듯 반짝입니다. 얼핏 거칠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겨진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 검은 모래는 한라산에서부터 오랜 세월 깎이고 다듬어진 화산암 조각들이 바다의 품에 안겨 비로소 태어난 것입니다. 거센 파도에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수억 번 반복하며 제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니게 된 것이지요.
이 모래를 맨발로 밟아보면, 보통의 해변과는 다른 단단함과 미세한 거친 감촉이 느껴집니다. 마치 오랜 삶의 풍파를 견뎌낸 노장(老將)의 손바닥처럼, 무심하지만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비탈진 논길을 걷던 맨발의 기억처럼, 잊고 지내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지요. 모래 한 톨 한 톨이 지닌 수천 년의 역사를 발바닥으로 더듬는 듯한 경험. 이 조약돌 같은 모래들은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며, 한편의 묵언수행 같은 고요함을 선물합니다. 그 위를 걷는 발자국 하나하나에 저의 하루가, 저의 고뇌가, 그리고 어쩌면 지난날의 삶이 새겨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이곳의 모래는 충분히 웅장한 서사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발아래 느껴지는 따뜻하고도 단단한 기운은 마치 대지가 나지막이 속삭이는 삶의 지혜 같았고, 발을 옮길 때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중문색달해변은 삶의 메시지
파도에 실린 삶의 메시지, 그리고 자연의 예술 중문색달해변의 바다는 그 색감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단순히 푸른색이라기엔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쪽빛'에 가깝습니다. 얕은 곳은 투명한 옥빛으로 빛나다가도, 저 멀리 망망대해로 나아갈수록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검푸른 남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이 색의 변화는 마치 삶의 굴곡을 그대로 담아낸 듯합니다. 때로는 잔잔한 미소로, 때로는 거대한 파도로 다가오는 우리네 인생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사연을 품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대변하며 삶이란 곧 영원한 움직임의 연속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중문의 파도는 특히나 역동적입니다. 드넓은 태평양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고 밀려오는 듯한 그 웅장함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서핑의 성지라 부르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파도 위를 유유히 미끄러지는 서퍼들의 모습은 흡사 자연과 하나 된 예술가 같았습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삶의 균형과 지혜가 담겨 있는 듯했죠. 저는 감히 그 파도에 몸을 맡길 용기는 없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이 울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때론 거센 파도가 두렵고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균형과 자유를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도는 때론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다가오지만, 결국 백사장으로 부드럽게 부서지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온화함도 보여주었습니다.
해변 뒤편으로는 수직으로 깎아 세운 듯한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습니다. 이 위대한 조각상들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자연의 예술품입니다. 특히 육각형 기둥들이 바다를 향해 정교하게 뻗어내린 주상절리대는 절경 중의 절경이라 할 만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대칭과 조화. 그 앞에서 저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그러나 동시에 그 광활함 속에서 얼마나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주상절리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는 인생이라는 긴 수필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저 견고한 절벽들처럼, 삶의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했습니다.
바람의 노래, 기억의 그림자
바람의 노래, 그리고 기억의 그림자 중문해변을 거니는 동안,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며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전해준 바람의 노래였습니다. 끈적임 없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제 이마에 맺힌 지난 세월의 주름살까지 시원하게 펴주는 듯했습니다.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지나가는 그 바람결에, 저는 어쩌면 지나온 삶의 족적들과,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기억의 그림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상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파도 소리는 또 어떻습니까.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편안하면서도, 때로는 지난날의 아쉬운 선택들을 꾸짖는 듯한 엄숙함을 지녔습니다. 모든 상념과 복잡한 마음을 파도에 실어 저 먼 바다로 떠나보내는 듯한 해방감. 그저 멍하니 파도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 안의 혼란스럽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멍 때리기'라는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습니다. 삶은 때로 굳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법입니다. 자연이 선사하는 이 모든 소리의 향연은, 분주했던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복잡했던 머릿속을 차분히 정돈시켜 주었습니다.
중문해변은 제게 단순한 풍경 이상의 것을 주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고난 속에서도, 결국 다시 잔잔해지는 바다처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흑진주 같은 모래알 하나하나가 오랜 시간을 견뎌 온 것처럼, 저의 지난 삶 또한 그 나름의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70년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살아왔지만, 중문은 여전히 저에게 새로운 문장과 단어를, 그리고 깊은 사유의 기회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다음번 이곳을 다시 찾을 때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제 붓끝을 통해 세상에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