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8월, 묵묵히 뿌리 내린 삶의 증인
제주의 8월은 열기로 가득하다. 바다에서도, 오름에서도 이글거리는 태양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런데 이 뜨거운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해묵은 동백나무들이다. 웬만한 나무들은 여름이면 푸른 잎으로 가득하지만, 겨울에 피어나는 꽃을 가진 동백나무는 이 여름에도 짙푸른 잎을 자랑하며 굳건히 서 있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마치 제주의 역사를 통째로 품고 있는 듯하다.
젊은 날에는 동백꽃의 화려함에만 눈이 팔려 동백나무의 묵묵한 존재감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7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꽃보다 나무의 강인함에 시선이 머무른다. 거친 바닷바람과 비, 그리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이 8월의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그 모습은 경외롭기까지 하다. 마치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이 오래된 동백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70년 인생의 고비들을 떠올린다. IMF 외환위기 때의 고통,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 예기치 않은 건강 문제 등등. 삶은 늘 예측 불가능한 폭염과 같은 시련들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 동백나무처럼 묵묵히 견뎌내려 노력했다. 쓰러질 듯 흔들려도, 어떻게든 뿌리 뽑히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옛말처럼, 그 인내의 시간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뜨거운 8월의 태양 아래 서 있는 동백나무는 나에게, 삶의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과 생명의 끈기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이다.
상처투성이 줄기, 고난이 새긴 문양들
오래된 동백나무의 줄기에는 수많은 상처와 옹이가 박혀 있다. 거친 바람에 꺾였던 가지의 흔적,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었다 녹아내린 자리,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깊은 주름들. 하지만 그 상처들은 동백나무를 추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나무의 오랜 역사와 강인한 생명력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문양처럼 느껴진다. 나무는 상처를 피하지 않고, 그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품고 살아가는 법을 안다.
나의 삶 또한 그러했다. 젊은 날의 나는 실패와 상처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남들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감추려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경험은 버릴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격언이 이제야 비로소 피부로 와닿는다. 내 삶의 모든 상처와 고난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깊은 상처 위에 새로운 살이 돋아나듯,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피어났다.
8월의 동백나무 그늘 아래 앉아 나는 나의 상처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픈 기억들도 이제는 쓰라림보다는 덤덤한 회상이 될 뿐이다. 그것이 나를 늙게 만든 흔적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킨 흔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디지털 의존성에서 벗어나 잠시 눈을 감고, 삶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본다.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사진 촬영을 할 때도 피사체의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피사체의 오랜 상처와 세월의 흔적 속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진짜배기다.
겨울을 꿈꾸는 여름, 인내의 미학
8월의 동백나무는 한여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이미 겨울에 피어날 꽃봉오리들을 조용히 품고 있다. 뜨거운 계절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은 인내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하다. 눈보라 속에서도 붉은 꽃을 피워내는 동백나무의 강인함은 이미 이 여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하는 묵묵한 힘을 의미한다.
70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진정한 성과는 짧은 순간의 폭발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통해 조용히 쌓아 올려진다는 것을. 한 달에 천 달러를 벌겠다는 나의 목표 또한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매일 경제 뉴스를 읽고, 투자 목표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끊임없이 글을 쓰는 것. 이 모든 꾸준함과 인내가 쌓여 결국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동백나무가 8월의 폭염 속에서도 겨울을 준비하듯이, 나 또한 지금의 삶 속에서 다가올 미래를 차분히 준비할 것이다.
제주의 8월, 해묵은 동백나무는 나에게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깊은 이치와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강인한 생명력과 묵묵한 인내, 그리고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지혜. 이 모든 것이 폭염 속 동백나무가 전해주는 메시지였다. 이제 나는 이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고, 남은 삶의 여정을 더욱 의연하고 지혜롭게 걸어 나갈 것이다. 제주, 고마웠다. 너는 나에게 삶의 깊이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귀한 스승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