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 건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도시의 하루가 막 시작되는 시각, 인도 위에는 이미 한참 전부터 기다리던 일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손끝은 거칠고, 새벽 공기를 머금은 숨결은 차갑게 흩어진다.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손주머니 속에서 체온을 지키는 이도 있고, 벤치나 난간에 기대어 졸음을 쫓는 이도 있다. 허름한 작업복은 지난날의 먼지와 땀 냄새를 고스란히 안고 있으며, 군데군데 해진 장화와 무릎 꿇은 바지는 이들의 지난 시간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길모퉁이에는 일용직을 연결해주는 인력 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네온 간판은 아직 희미하게 빛나고, 철문 앞에는 기대감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들이 모여든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을 향한다. 하지만 대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리만 돌아온다. “오늘은 자리가 다 찼습니다.” “내일 다시 나오세요.” 그런 말들이 반복될 때마다, 대기하던 이들의 어깨가 조금씩 더 처진다. 어떤 이는 허탈하게 웃으며 담배를 다시 붙이고, 어떤 이는 무겁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이내 또 다른 하루의 끝처럼, 발길을 돌려야 한다.
사무소 앞 골목길에는 종이컵에 담긴 값싼 커피 향이 퍼진다. 매일 같은 시간, 트럭 기사들이 사다 놓은 음료는 기다림의 동반자다. 일꾼들은 작은 종이컵을 손에 쥐고 두 손으로 감싸며 잠시 온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식는 순간, 그들의 표정도 다시 차갑게 굳는다. 주변에는 흔히 보이는 편의점 불빛이 새벽을 밝히고, 그 앞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국물의 뜨거움에 이마에 땀이 맺히지만, 마음 속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길바닥에는 낡은 장갑과 닳아빠진 안전모가 놓여 있다. 어떤 이는 안전모를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붙이고, 또 어떤 이는 휴대전화 속 시계를 자꾸만 확인한다. 그 초침이 지나가는 속도는 유난히 느리고, 불려지지 않는 이름은 여전히 침묵 속에 묻혀 있다. 누군가는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 벌 수 있었던 일당을 계산한다. 12만 원, 13만 원, 혹은 조금 더. 그 돈이면 밀린 공과금을 낼 수 있고, 아이 학원비의 일부라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숫자는 결국 허공에 머문다.
하늘은 점점 밝아온다. 새벽의 푸른빛이 옅어지면서, 도시의 빌딩 유리창에는 아침 햇살이 서서히 번져간다. 출근길 회사원들이 하나둘씩 골목을 스쳐 지나간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들의 신발 소리는 바쁘고 경쾌하다. 그 발걸음은 건설 일꾼들의 무거운 구두 소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로 다른 하루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일거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흩어진다. 한 무리는 지하철역으로 발길을 옮기고, 또 다른 무리는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다음 기회를 도모한다. 누군가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허기를 채우려 하고, 누군가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집 역시 휴식의 공간이라기보다 또 다른 근심의 장소일 때가 많다. 가족에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더욱 무겁고, 대문 앞에 서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골목 어귀에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이 남아 있다. 혹시라도 늦게 오는 차가 자신들을 태워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은 옅어지고, 하늘은 이미 완전히 아침을 밝힌다. 종소리처럼 울리는 교통신호음과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가 도시의 소란을 깨운다. 그 소란 속에서도 일거리를 얻지 못한 이들의 침묵은 묵직하다.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진다. 그 그림자 속에는 지친 하루의 무게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나 내일도, 모레도, 그들은 다시 이 거리에 나올 것이다. 언젠가 불려질 이름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의 새벽은 매일 같은 풍경을 반복한다. 아침 여섯 시, 건설 일자리를 찾다가 못 찾고 돌아가는 일꾼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묵묵히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모여드는 발걸음
도시의 한 귀퉁이에 있는 공사 인력시장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겨울철에는 숨결마다 하얀 입김이 공중에 흩날리고, 여름철에는 새벽 공기에도 땀이 맺혀 옷깃을 적신다. 좁은 인력사무소 앞 골목길은 오래된 벽돌 건물과 낡은 가로등 불빛으로 어슴푸레 빛나고, 그 불빛 아래로 무겁고 느린 걸음들이 속속 도착한다. 누군가는 헌 작업화를 질질 끌고, 또 누군가는 허름한 모자를 눌러쓰며 담배를 물고 있다. 일거리를 얻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크게 웃지 않는다. 대신 서로 눈인사만 짧게 주고받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긴장과 기대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오늘은 일거리가 좀 있을까.”
누군가 낮게 내뱉은 말은 금세 주변의 공기를 흔들어 놓는다. 대답은 거의 없다. 다들 마음속으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지만, 섣불리 답하기가 어렵다. 건설 경기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이 바로 이 자리의 일거리다. 새벽마다 모여드는 이 수십 명의 노동자 중 일부만이 현장으로 불려 나갈 수 있고, 나머지는 결국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색빛 하늘은 천천히 밝아오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안개 같은 불안이 깔려 있다.
기다림의 무게와 나눠지는 침묵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인력사무소 안쪽 게시판에는 그날그날 필요한 인원과 현장 명단이 붙는데, 이름이 불릴 때까지 모두 숨을 죽인다. 이름을 들은 이는 곧장 몸을 일으켜 준비된 트럭이나 봉고차에 올라타지만, 불리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담배를 태우거나 종이컵 커피를 홀짝인다. 싸구려 자판기 커피의 단내와 싸한 담배 연기가 뒤엉켜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다.
어떤 이는 조용히 손전화기를 들여다본다. 화면 속에는 자고 있을 가족의 사진이 배경으로 걸려 있다. 아이의 얼굴, 노부모의 얼굴이 번갈아 떠오른다. 그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눈빛은 잠시 흔들리지만, 곧 다시 굳어진다. ‘오늘은 꼭 일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애써 침묵 속에 묻힌다. 옆자리의 동료가 건네는 짧은 농담에도 큰 웃음은 터지지 않는다. 웃음은 가볍게 입술 끝만 스쳐 지나간다. 기다림의 무게가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눌러 앉혀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한두 곳에서 현장 소장이 나타나 사람들의 얼굴을 훑는다. “오늘은 다섯 명만 필요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다섯 자리로 쏠린다. 선택받은 이들은 재빨리 몸을 움직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다시 붙인다. 불빛은 다시 희미해지고, 침묵은 더 짙어진다. 이렇게 한두 번 기회가 지나가고 나면, 벌써 아침은 훌쩍 깊어진다.
빈손의 귀가와 남겨지는 그림자
아침 아홉 시가 넘어가면 대체로 현장 인력 모집은 끝난다. 그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발걸음은 아침에 도착할 때보다 더 무겁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은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지치게 만든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두 손은 깊숙이 주머니에 파묻혀 있다. 눈앞에 스치는 행인들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듯 경쾌한 걸음을 옮기지만, 그들의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근처 작은 분식집에 들러 허기를 채우려 하지만,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김밥 한 줄, 라면 한 그릇도 망설여진다. 결국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을 삼키며 마음을 달래는 것이 전부다.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인력사무소 앞 풍경은 여전히 비슷하다.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꾼들의 뒷모습에는 공통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피로와 좌절만이 아니라, 다시 내일을 향한 희망의 기묘한 혼합이다. ‘내일은 꼭 불려 나가리라’는 다짐이 그들을 다시 새벽길로 이끈다. 차갑게 식은 도시의 아침 공기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생존의 불빛, 그것이 그들의 그림자 속에 살아 숨 쉰다.
아침 여섯 시의 인력시장은 단순히 일감을 찾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무거운 약속의 장소다. 빛나지 않고 기록되지 않지만, 그 자리에 모여드는 수많은 발걸음은 도시의 하루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과 같다. 그 기둥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늘도 누군가는 빈손으로 돌아서면서도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