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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 10. 신선식품 배송기사

by 휘준쭌 2025. 8. 19.

신선식품 배달기사

 

새벽, 신선함과의 전쟁

 

아침 6시, 도시의 거리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모습이다. 신호등만 졸린 눈을 깜빡이며 서 있고, 가로수 잎사귀 위엔 밤새 내린 이슬이 반짝였다. 출근길 인파가 몰리기엔 이른 시간, 길 위엔 청소차와 몇 대의 택시만 드문드문 보인다. 그러나 도시가 고요히 잠든 사이, 이미 하루의 절반을 살아낸 이들이 있다. 신선식품 배송기사 김지훈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김 씨의 하루는 새벽 두 시 반에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그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서둘러 작업복을 챙겨 입고, 커피 한 잔을 들이켜며 트럭 키를 손에 쥔다. 곧장 물류센터로 향하는 그의 눈에는 아직 별빛이 선명하다. “이 시간이 제일 힘들죠. 졸음도 몰려오고, 몸도 무겁고. 하지만 트럭 시동을 켜는 순간 정신이 확 깨어나요. 오늘도 싸움이 시작됐구나 싶거든요.”

물류센터에 도착하면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어두운 새벽, 그곳은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수십 명의 기사들이 분주히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오늘도 파이팅!” 하는 인사말이 오갔다. 김 씨는 동료들과 짧게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린 뒤, 자신의 트럭을 채우기 시작했다.

트럭 내부는 작은 냉장창고와 같았다. 채소, 과일, 생선, 달걀, 유제품… 박스마다 ‘이 아침의 주인’을 기다리듯 주소가 붙어 있었다. 그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달걀 상자부터 10kg짜리 사과 상자까지, 공간을 계산하며 능숙하게 적재했다. “이게 단순히 물건 싣는 게 아니에요. 계란은 위에, 무거운 감자는 아래에, 흔들리기 쉬운 상자는 벽 쪽에. 그 균형을 잘못 잡으면 배송 도중에 전부 망가져요.”

 

그의 눈빛은 마치 장인의 그것 같았다

 

단순한 상차가 아니라 누군가의 밥상을 책임지는 의식 같았다. “어제 저녁, 땀 흘리며 채소를 수확한 농부 얼굴을 떠올리면, 그냥 대충 할 수가 없어요. 신선한 마음까지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도시의 고요와 그의 분주함

트럭이 도로에 나서자, 도시는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텅 빈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횡단보도 위에는 신문이 담긴 비닐봉투가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트럭 안은 달랐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와 음악이 긴장된 공기를 풀어 주었고, 김 씨는 지도와 배송 순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핸들을 꽉 잡았다. “도로가 뻥 뚫려 있는 건 정말 큰 행운이죠. 러시아워에 걸리면 10분 걸릴 거리를 30분 넘게 허비할 때도 있어요.”

첫 배달지는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였다. 그는 트럭에서 무거운 박스를 꺼내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박스를 현관 앞에 내려놓은 뒤 휴대폰으로 ‘배송 완료’ 버튼을 누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대부분은 이런 비대면 방식으로 끝나죠. 하지만 문고리에 걸린 작은 쪽지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고맙습니다’라든가, ‘덕분에 아이들 아침밥을 잘 먹였어요.’ 이런 글귀 하나가 새벽의 피로를 싹 날려 줍니다.”

두 번째 배달지는 오래된 주택가였다. 이곳에서는 고객과 눈을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중년 부부는 현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수고 많으십니다” 하며 직접 상자를 받아 들었다. 어떤 아이는 잠옷 차림으로 현관에 나와 “아이스크림 왔어?” 하고 묻기도 했다. 김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딸기 우유예요.” 잠결에도 환하게 웃는 아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졸음도 피곤함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위기와 극복

 

물론 이 일이 언제나 순탄한 것은 아니다. 한 번은 급커브를 돌다가 박스가 와르르 쏟아졌다. 트럭 바닥에 굴러다니는 달걀과 으깨진 토마토를 보며 그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날은 정말 재난 영화 같았어요. 다행히 고객들에게 사정을 설명드리고, 회사에서 다시 보충해 드렸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겁더군요.”

비 오는 날은 더 힘들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발이 미끄러져 아찔한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고객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를 버티게 했다. “괜찮으세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어떤 집에서는 수건이나 따뜻한 차를 내어주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특히 긴장감이 컸다. 모두가 외출을 자제하던 그때, 새벽 배송은 일상의 버팀목이었다. 김 씨는 방역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으면서 문 앞에 상자를 놓고 돌아서야 했다. “사람 얼굴도 못 보고, 고맙다는 인사도 문자로만 받았지만, 그때만큼 제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그의 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다. 농장에서 땀 흘려 키운 채소와 과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 농가에서 갓 짜낸 우유가 그의 손을 거쳐 도시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저는 연결고리일 뿐이지만, 그 고리가 끊기면 아침의 풍경이 달라지죠. 그래서 늘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시의 숨은 조력자’라 부른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아침 햇살이 비칠 때쯤이면 절반의 일을 끝낸다. 빌딩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깊은 숨을 내쉰다.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군가는 아침 식탁에서 신선한 채소를 만나지 못하겠죠. 그 생각이 저를 버티게 해요.”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내일

 

오전 아홉 시쯤, 모든 배송을 마치고 트럭을 물류센터에 반납하면 그의 긴 하루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김 씨는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현관 앞에서 반겨주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빠 왔어요?” 하며 달려오는 아이들, “오늘도 고생했어요” 하고 따뜻한 국을 데워 주는 아내. 그는 그 순간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아빠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도시를 깨우는 일을 했어. 누군가의 아침을 책임졌단다.”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오랜 땀방울을 위로해 줄 것이라 믿는다.

새벽 어둠을 뚫고 달려온 김 씨의 트럭은 오늘도 도시의 하루를 열어젖힌다. 아직 길거리는 졸린 듯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켜켜이 쌓여 있다. 도시의 아침은 누군가의 땀방울로 준비된다. 김 씨는 그 진실을 몸으로 살아내며, 오늘도 묵묵히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 내일 새벽, 다시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뜰 것이다.

“아침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손길이 쌓여서 오는 거죠.” 김 씨의 말처럼, 우리 식탁에 놓인 신선한 한 끼는 사실 수많은 이름 없는 일꾼들의 노력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