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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 8. 우유 배달부

by 휘준쭌 2025. 8. 18.

아침 우유 배달부
아침 우유 배달부

도시의 새벽을 깨우는 우유병, 그리고 작은 영웅


아침 여섯 시, 도시는 아직 완전히 눈을 뜨지 못한 듯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회색빛 빌딩 숲 사이로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듯 희미한 여명의 빛이 간신히 스며들고, 좁은 골목길은 여전히 깊은 밤의 잔영을 품은 채 어둑하다. 자동차의 소음 대신 바람결에 실린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이 정적을 간헐적으로 깨뜨릴 뿐이다. 하지만 이 고요한 시간에도, 도심의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이미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걸음과 땀방울이 서리고 있다. 바로 낡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새벽 공기를 가르는 청년, 이현수 씨의 발걸음이다. 그는 번듯한 대학을 졸업한 후 수많은 이들이 선망하던 대기업 입사 대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묵묵히 우유 배달의 길을 선택했다. 주변의 수많은 궁금증과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묵묵히 이 새벽을 지켜낸다.

 

“우유 배달은 단순히 유리병에 담긴 액체를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 작은 병 안에는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신선한 활력이, 또 하루를 든든하게 지켜줄 약속 같은 마음이 담겨 있는 거죠. 어쩌면 새벽을 여는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따뜻한 신호라고 할까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우유병은 여전히 차갑고 묵직한 유리로 되어 있다. 급변하는 시대, 모든 것이 빠르고 간편하게 변모하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유리병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아침의 순수함과 정겨움이 오롯이 담겨 있다. 뚜껑을 열면 코끝을 자극하는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서로 부딪히는 병들의 ‘짤그랑’ 소리는 마치 새벽을 알리는 청아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이현수 씨는 그 옛날부터 이어져 온 손끝의 감각, 이 특별한 손맛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물론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 팩도 요즘은 많이 사용되죠. 하지만 유리병은 그 무게감과 투명함으로 사람에게 신선함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을 직접 전달하는 듯한 특별한 느낌이 있어요. 손으로 직접 만져지고, 눈으로 내용물이 확인되면서 생겨나는 교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고단함보다는 오히려 깊은 자부심과 진지한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골목마다 스미는 아침인사, 그리고 교감


이현수 씨의 하루는 새벽 네 시, 다른 이들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별빛마저 희미해질 무렵,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창고에서 막 배달되어 온 우유를 정성껏 자전거에 싣는 것으로 그의 여정은 시작된다. 빽빽이 들어선 도시의 골목마다 그만의 정교한 배달 순서가 정해져 있다. 굳게 닫힌 어느 집 대문 앞, 삐걱이는 어느 빌라 현관 옆, 심지어 오래된 주택의 작은 창문 턱 위까지. 그의 자전거가 스쳐 지나가는 발길 닿는 곳곳마다, 보이지 않는 이현수 씨의 묵묵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다.

 

단순히 우유병을 놓아두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 앞에 우유병을 조심스레 내려놓을 때마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작은 안부 편지를 직접 전하는 듯한 지극한 심정이 된다. 때로는 새벽에 일찍 문을 나서는 이웃들과 우연히 마주치면 짧지만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할머니는 제가 우유병을 놓아두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벌써 문을 여시면서 항상 ‘학생 덕분에 오늘도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씀하세요. 그 말 한마디가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또 어린아이들은 아침에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유병을 발견하고는 해맑게 웃으면서 뛰어가는데, 그 순수한 웃음 덕분에 저 역시 피로를 잊고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죠.”

 

그에게는 또 하나의 소박하지만 확실한 기쁨이 있다. 바로 우유병에 붙어 있는 손글씨 쪽지들이다.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벽 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와 같은 따뜻한 글귀는 비록 작은 메모지만, 그의 마음속에 잔잔하고 강한 울림을 준다. 어떤 날은 그 쪽지 하나가 종일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쿠키나 직접 빚은 과일, 따뜻한 캔커피 같은 작은 간식을 건네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 내가 이 일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구나. 헛된 고생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어요.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따뜻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죠.”

 

비바람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의 무게


물론 이현수 씨의 일상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다루는 유리병은 생각보다 무겁고, 무엇보다 쉽게 깨질 수 있어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장마철에는 빗물에 미끄러워진 골목길이 그에게는 큰 적이자 위협이 된다. “한 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우산을 쓰고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달리다가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미끄러질 뻔했어요. 그때 순간적으로 ‘우유병이 깨지면 어쩌지?’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크게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위기를 넘겼죠. 하지만 그 아찔한 순간에도 ‘아침 우유를 기다릴 주민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더라고요. 제 손에 들린 건 단순히 우유병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를 싣고 가는 책임감이었으니까요.”

 

매서운 겨울의 추위 또한 그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금속 자전거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얼얼하고, 새벽 공기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안겨준다. 이렇듯 몸의 고단함은 매일매일 축적되어 그의 젊은 무릎과 허리에도 서서히 통증을 불러오곤 한다. 하지만 이현수 씨는 결코 힘든 티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덕분에 우리 집 아침이 즐겁고 든든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모든 고생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이 일은 단순히 몸을 쓰는 노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숭고한 일이니까요.”

 

많은 이들이 그에게 묻는다. “아니, 젊은 나이에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이 고되고 옛날 방식의 일을 계속하느냐.” 그러나 그는 질문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반문하곤 한다. “이 일이 도시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이잖아요.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아무도 하지 않게 된다면, 이처럼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아침 의식은 언젠가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저는 사라져가는 그 소박한 가치와 의미 있는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그리는 배달부의 마음,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


젊은 나이에 낡은 전통 직업을 묵묵히 이어가는 그의 선택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다르게 비쳐진다. 동창들은 각자 안정된 직장을 얻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현수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길에 대한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다들 저를 걱정했죠. 심지어 비웃는 사람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하는 이 일을 부끄럽거나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대기업의 성과보다 더 값진,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가치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작은 행복을 제가 직접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또한 단순히 옛것을 고집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 작은 배달을 통해 미래에 대한 소박하지만 분명한 비전을 품고 있다. 옛 방식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첨단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싶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서 우유 배달 완료 알림을 주거나, 고객들이 정기 구독 시스템을 훨씬 더 편리하게 관리하고 변경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새벽마다 집에서 신선한 유리병 우유를 손쉽고 간편하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옛것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제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현수 씨의 하루가 끝날 무렵, 도시는 어느새 활기찬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이현수 씨의 발걸음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하루는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 분주해지기 전 이미 절반쯤은 끝나 있는 셈이다.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땀과 노력의 흔적이 배어 있는 자전거를 몰고 창고로 향한다. “사람들이 아침에 현관에서 우유병을 들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보람과 기쁨으로 제 하루도 가득 채워져요. 그게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아침 여섯 시의 우유병은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고요한 도시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연결하는 다리이며, 말없이 서로의 안녕을 전하는 작은 편지이자, 잊혀져가는 전통의 소중한 가치를 묵묵히 이어가는 이현수 씨의 따뜻한 손길 그 자체이다. 그가 매일매일 배달하는 유리병 하나하나에 담긴 이현수 씨의 성실함과 진심 어린 정성은, 오늘도 수많은 가정의 하루를 든든하게 열어주며 도시의 숨겨진 영웅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