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이야기
아침 6시, 도시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하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희미한 주황빛이 서서히 하늘을 물들이는 이 시간, 시내버스 첫차 기사 이재훈 씨는 벌써 하루를 시작했다. 12년 차 베테랑인 그는 새벽 3시 반에 차고지에 도착해, 혼자서 ‘버스 건강검진’을 한다.
“오일 한 방울, 타이어 공기압, 브레이크 반응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죠. 첫차는 ‘도시의 첫 인사’니까요. 사고 한 번 내면 그날 아침은 완전 난장판 됩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난장판’이라는 표현 덕분에, 잠시 도시 전체가 엉망진창 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버스는 그의 손길을 거쳐 반짝 빛났다. 차내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이재훈 씨는 거울 앞에서 ‘오늘도 무사히’라고 중얼거리며 모자를 눌러 썼다. “이 작은 습관들이 큰 사고를 막아요.”
출발 전 버스 내부는 적막 그 자체다. 승객은 물론이고,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버스와 기사, 둘만의 시간’이다. 그는 시동을 걸며 “하루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라 했다. 이때 잘못하면 버스가 시동 꺼질 수도 있다며, ‘서커스단 공연 시작 직전의 숨 고르기’ 같다고 했다.
도로 위 첫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얼굴을 때리고, 안개가 자욱하면 시야는 마치 수묵화처럼 몽환적이다. “그럴 때는 더 느긋하게,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죠. 앞차가 갑자기 멈출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운전대를 꽉 잡았다.
6시 무렵부터 승객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출근하는 회사원, 학교 가는 학생, 아침 시장에 가려는 할머니, 그리고 무표정한 새벽 알바생까지. 첫차의 승객은 그야말로 ‘도시의 원초적 생명체’들이었다. “가끔은 이 버스가 요가 클래스냐 싶을 정도로 다들 조용히 앉아서 명상하듯 창밖을 봐요. 물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사람도 많지만요.”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하루 중에 제일 사람 얼굴 안 보는 시간이 새벽 첫차 운전할 때예요. 마스크도 쓰고, 승객들도 모두 자기 세계에 빠져 있으니까.” 모두가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이었다.
운행 중에도 이재훈 씨는 늘 승객들을 위해 노력한다. 부드러운 안내 방송으로 출발과 정차를 알리고, 하차할 때는 “안전하게 내리세요”라며 작은 배려를 잊지 않는다.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지팡이를 놓고 내리셔서, 다시 뒤로 가서 드린 적이 있어요. 그날은 은근히 영웅 같았죠.”
6시 30분, 도로는 점차 붐비기 시작한다.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핸들을 잡았다. “아침 첫차 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요. 사실 출근길은 전쟁터잖아요. 차가 막히고, 시간은 촉박하고.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길잡이가 되길 바라죠.”
그의 하루는 6시 45분쯤 첫 운행을 마치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버스를 몰아야 한다. “첫차가 무사히 끝나면, 오늘은 성공했다는 느낌이에요. 아침 첫걸음부터 실패하면 하루 종일 꼬일 테니까요.” 그는 웃으며 운전대를 넘겼다.
도시가 완전히 깨어날 즈음, 나는 물었다. “왜 이 일을 계속하시나요?”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아침 첫차를 몰면, 도시가 아직 순수한 모습일 때 함께할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이 순간을 무심히 지나가지만, 저한텐 ‘도시의 새벽 지킴이’ 같은 의미가 있죠. 그리고 솔직히, 밤낮 바뀐 삶이 조금 재미있기도 해요.”
또 다른 일꾼들, 도시의 새벽을 채우다
버스가 도시의 혈관이라면, 거리를 지나는 환경미화원들은 ‘숨은 청소부대’다. 노란 조끼를 입은 김선호 씨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인도를 훑는다. 사람들이 흘리고 간 커피컵, 신문지, 밤새 쌓인 낙엽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사라진다.
“이 시간에 쓰레기를 치워야 출근길이 쾌적해져요. 출근길에 쓰레기 뒹굴면 하루 기분이 달라지거든요.”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름이면 땀범벅, 겨울이면 손끝이 얼어붙지만, 그에게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아침 거리를 제가 첫 번째로 걷는 느낌이에요. 깨끗해진 길을 보면 ‘이 도시가 이제 깨어난다’ 싶죠.”
멀리 빵집에서도 불빛이 환하다. 새벽 2시부터 반죽을 치대던 제빵사 이지현 씨는 갓 구워낸 식빵을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손님에게 따끈한 빵을 내주며 말했다. “사실 제 하루는 해뜨기 전에 끝나죠. 빵은 아침에 맞춰 나와야 하니까요. 저희 손끝이 누군가의 하루를 달콤하게 시작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커요.”
신문 배달원도 빼놓을 수 없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박영수 씨는 빗방울 같은 이슬을 맞으며 집집마다 신문을 꽂는다. “요즘은 신문 구독이 줄었지만, 아직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조금만 늦어도 전화가 오거든요. 신문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하루를 열어주는 알람’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걸 알죠.”
그리고 편의점의 불빛은 새벽에도 꺼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 정은호 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계산대를 지킨다. “밤새 택시 기사님들, 새벽에 출근하는 분들이 잠깐 들러요. 도시가 완전히 자는 시간 같아 보여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거든요.” 그는 ‘도시의 심야와 새벽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도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
이재훈 씨와 같은 첫차 기사, 그리고 환경미화원, 제빵사, 신문 배달원, 편의점 알바생까지.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의 새벽을 열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남들보다 몇 시간 먼저 시작되고, 피곤함도 배로 찾아오지만, 그 덕분에 다른 이들의 하루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도시는 늘 화려한 낮과 불빛 가득한 밤만 기억된다. 그러나 그 하루를 지탱하는 뿌리는 보이지 않는 새벽 노동자들이다. 누군가는 잠에서 뒤척이는 시간, 누군가는 첫 알람을 끄는 시간에, 이미 수많은 손길이 도시 곳곳을 다독이고 있었다.
아침 6시의 시내버스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었다. 거리 위를 묵묵히 쓸던 빗자루, 오븐에서 막 나온 따뜻한 빵, 현관 앞에 놓인 신문, 편의점의 환한 불빛. 모두가 도시의 심장을 깨우는 심장박동이었다.
그래서 새벽 6시는, 단순히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도시가 숨을 고르고 다시 살아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일꾼들의 땀과 웃음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