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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부부 한 달 전기요금 : 여름과 겨울의 차이 -휘준-

by 휘준쭌 2025. 8. 11.

여름과 겨울의 차이
여름과 겨울의 차이

고지서가 들려주는 계절의 표정

 매달 중순, 우체통에 꽂힌 고지서를 꺼낼 때마다 손끝에 궁금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그 안에는 우리 집의 지난 한 달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이 한 장에 숫자 몇 줄, 그러나 그 숫자는 우리가 얼마나 덥게 살았는지, 얼마나 춥게 살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70세와 65세 부부가 사는 우리 집은 33평 아파트입니다. 냉장고, 세탁기, TV, 전자레인지, 밥솥… 평범한 가전이 전부이고, 전기먹는 하마로 불릴 만한 대형 가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기요금 그래프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들쭉날쭉합니다.
 6월, 봄의 잔열이 가신 시기에는 5만 원대에 불과했던 전기요금이, 8월이 되면 15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10월의 선선한 바람 속에 4만 원대였던 요금이 1월이면 11만 원을 기록합니다. 여름은 에어컨, 겨울은 온수 사용이 원흉이죠. 숫자는 계절을 타고 오르내리지만, 흥미롭게도 연중 최고치가 여름이냐 겨울이냐만 다를 뿐, 지출 규모는 비슷합니다.
 고지서를 들여다보며 저는 종종 중얼거립니다. “덥든 춥든 전기 회사에 바치는 금액은 똑같네.” 그 순간,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단순한 청구서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생활 습관과 계절별 생존 전략을 기록한 보고서처럼 느껴집니다.

 

여름의 시원함, 겨울의 따뜻함… 그리고 숫자의 반격


 여름철, 전기요금을 끌어올리는 주범은 단연 에어컨입니다. 우리는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놓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주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창문 밖 햇살이 벽을 달굴 때만 켭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선풍기와 커튼, 얼음물로 버팁니다. 그런데도 여름 고지서의 숫자는 매년 치솟습니다.
 에어컨이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간당 소비 전력과 누진제 구간이 이렇게 무섭게 작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여름엔 냉장고도 더 열심히 일합니다. 음료수가 많아지고, 자주 문을 열고 닫으니 전력 소모가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도 요금 상승에 한몫합니다.
 겨울은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난방을 완전히 끄고 살 수는 없으니, 거실에는 전기난로를 두고, 침실에는 온열매트를 깝니다. ‘이불 속이 따뜻하면 난방비를 줄일 수 있겠지’라는 계산이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온열매트를 하루 10시간씩 켜두니, 에어컨보다 더한 전력 소모가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겨울에는 해가 짧아 실내조명을 오래 켜야 하고, 전기포트나 전기찜기 사용도 잦아집니다. 결국 여름과 겨울의 전기요금 상승은 주범이 다를 뿐, ‘생활의 편안함’이라는 유혹에 진 것은 똑같습니다. 차이는, 여름 전기요금은 냉방 시간을 줄이면 눈에 띄게 내려가지만, 겨울 요금은 줄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추위 앞에선 절약 정신이 무너집니다.

 

숫자가 들려주는 생활 습관의 비밀


 전기요금 명세서를 자세히 보면 금액 외에도 흥미로운 데이터가 많습니다. 시간대별 사용량 그래프를 보면, 여름에는 오후 2~6시 사이 사용량이 가장 높습니다. 그 시간대에 에어컨이 돌아갔다는 증거죠. 겨울에는 새벽과 밤 시간대 사용량이 높습니다. 침실 온열매트와 거실 난로가 열일했다는 기록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기요금은 생활 습관의 거울입니다. 한 달치 전기요금을 분석하면, 우리가 언제 집에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계절을 견뎠는지까지 알 수 있습니다. 여름철 낮 사용량이 많다면 더위를 피해 실내에 머무른 것이고, 겨울 밤 사용량이 많다면 잠자리의 포근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전기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 패턴을 재설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름엔 오후 시간에 외출을 하고, 겨울엔 햇볕이 잘 드는 낮에 집안일을 몰아서 하면 난방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올해는 이런 생활 실험을 해볼 생각입니다.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창문형 환기팬과 제습기를 조합해 쓰고, 겨울에는 온열매트를 취침 30분 전만 켜고 타이머로 꺼두는 방식입니다. 더불어 조명은 LED로 교체해 소비 전력을 줄이고,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 대신 전자레인지를 활용할 예정입니다.
 내년 이맘때, 고지서의 숫자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어쩌면 전기요금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숫자 속에서 발견하게 될 우리 부부의 새로운 생활 리듬일지도 모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